늙은 지붕위의 여우비 처럼
김륭
속절없이 늙은 닭, 다리만 수거해왔어요.
몸통은 어디로 배달되었는지 날개는 큰길 건너 아파트 몇 층으로 날아올랐는지
붕붕거리는 오토바이 꽁무니 가득 매달린 달은 오늘도 달걀 대신 계단을 낳고 입 안 가득 쌓이는 오리발 키스가 병뚜껑처럼 오므라지는 날이에요.
맥주 대신 콜라를 마시면서 속이 시꺼매 다행, 이라고 중얼거린 말이 그녀 가위질 당한 짧은 스커트 밑을 구르며 오소소 태어나는 순간 싹둑,
잘린 것은 탯줄이 아니라 꼬리였는지 몰라요.
매번 기차보다 심하게 몸을 덜컹거렸지만 날개를 꺼내진 못했죠.
바람은 쿡, 쿡쿡 썩은 나뭇가지로 제 눈이라도 찔러 뿌리를 내리고 몸과 함께 태어나지 못한 시간들의 혼잣말인줄 까맣게 몰랐죠.
처음엔 닭 가슴살 같았죠. 때론 소리 없이 늙은 악기처럼 우물쭈물 전생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달을 달걀처럼 깨뜨려보고 싶은 밤이에요. 못 견딜 정도로 외롭진 않았지만 지루했겠죠.
천식을 앓는 아버지 아랫도리와 함께 썩히지 못한 야생의 날들을 지키는 어머니처럼, 썩은 이빨을 금으로 덮어씌우는 일이었죠.
혀라도 깨물어야겠어요. 반짝, 늙은 지붕 위로 던진 사랑니 하나로도 흑기사를 불러낼 수 있을지 몰라요.
오리발 하나에 꼬리가 백 개인 여우 한 마리, 그녀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죠. 짝짓기가 아니에요.
사랑은 자작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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