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을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항복'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뜻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은 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전황은'무조건항복'을 결정했다.
일부 장교단이 항복을 거부하며 쿠데타를 계획했지만 대세를 거스를수는 없었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에 울려 펴졌다.
패전과 항복의 조곡이 었다.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이 남았지만 아무도 이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아 난항을 겪었따.
결국 시게미쓰 마모르 외무장관이 악역을 떠맡았다.
그는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왼쪽 다리를 잃었던 외교관이었다.
마침내 9월2일 요코하마 정박중인 미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시게미쓰가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 태평양전쟁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출처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list.jsp?hm=0902&cm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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