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國債報償運動] 시작일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서 이에 호응했다. 일본까지 파급되어 800여 명의 유학생들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이 실시된 이후 4월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은 4만여 명이고, 5월말까지 230만 원 이상이 거두어졌다.
국채보상운동이란 1907년(융희 1) 2월에 대구에서 시작된 국권회복운동으로
전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1,300만 원)를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운동을 말한다.
1907년 2월 서상돈·김광제·박해령 등 16명이 대구에서 조직한 국채보상기성회는 곧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서 이에 호응했다. 일본까지 파급되어 800여 명의 유학생들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이 실시된 이후 4월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은 4만여 명이고, 5월말까지 230만 원 이상이 거두어졌다.
이에 대해 일제는 송병준 등 친일파가 지휘하던 매국단체 일진회를 이용하여 방해하고,
통감부에서 국채보상회의 간사인 양기탁을 보상금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결국 양기탁은 무죄로 석방되었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더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이 운동은 우리 민족의 강렬하고 자발적인 애국정신이 발휘된 국권회복운동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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