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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Literacy (Amoeba)

[교육] 나도 울고 친구도 울고 교수도 울었다 …누구를 위한 영어인가

<매일경제 Citylife 제335호(12.07.10일자) 기사>

 

영어강의를 강요하는 대학.

결국 그 피해는 학생에게 ...

 

나는 전공지식이 깊지 못하다.

이 창피한 사실을 굳이 모두가 보는 기사에 ‘커밍아웃’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4년 내내 들었던 영어강의 때문인 것 같아서다.

4년 동안의 기억이라고 하면 영어 강의를 따라가기에 급급해 머리를 쥐어뜯었다는 사실 정도다.

게다가 나의 모교는 예체능 대학인 회화과나 음대에도 전공수업에 영어강의가 있는 학교였다.

 총장은 여기가 서울인지 맨해튼인지 구분을 못하는 게 분명했다.

 

구태여 먼지를 털어 이런 낡은 논란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대학에서 폭력적이고 의무적인 영어강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뿐인 영어강의 시행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대학 측에서는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영어강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Y대에 재학 중인 김준희(23) 씨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어강의는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절대 들을 수 없는 강의예요.

그냥 (외국에서)살다온 아이들끼리 점수 따려고 듣는 수업이에요.

 영어를 잘하고 싶어 영어강의를 수강한다는 건 멍청한 대학생이죠.

 취업 때문에 재수강, 삼수강도 하는 판인데 그 어느 누가 영어를 배우겠다며 영어강의를 듣겠어요?”

 S대 학생 최희윤(24) 씨 역시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제가 그 수업을 들으며 배우고자 하는 건 영어 자체가 아닌 그 과목이거든요.

 그런데 제대로 의미전달조차 되지 않는 영어로 꼭 해야 하나 싶어요.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안 들으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러면 졸업이 안돼요.

 학생의 역량도 문제가 있지만 교수님도 강의하시면서 힘들어 하는 게 눈에 다 보여요.

 사투리 억양으로 영어를 하시는데 참...대학에서 말하는 국제화가 사투리로 배우는 코리안 로컬 영어인가요?

제대로 된 교수진도 없으면서 무작정 영어강의를 시행하는 대학본부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방미루(23) 군은 8개월 정도 어학연수 경험이 있다.

 “외국인 교수가 수업을 하면 그나마 괜찮아요.

그들은 쉬운 단어를 취사선택해 사용해서 평범한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거든요.

이러면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질지 몰라도 결코 고급영어로 발전할 수 없고, 전공지식은 하나도 얻을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를 출제하는 교수나 답을 써내려가는 학생들도 참 신기하죠.”

 

조사에 따르면 국제화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도 마냥 좋지만은 않단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온 박용성(24)씨는 말한다.

“이럴 거면 그냥 캐나다에 있을 것 그랬어요.

영어강의의 질은 그쪽이 훨씬 좋은데 굳이 한국에 들어와서 단편적인 지식이나 듣고 있기에는 제가 감당하는 기회비용이 큽니다.

 뭐,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학점은 쉽게 받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요.”

이렇게 외국 체류경험이 있는 학생들만 마치 특권층인양 교수와 소통을 하고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그들의 ‘들러리’를 서야 하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반복되고 있다.

 대학 경쟁력 신장이라는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었다.

 

‘영어강의 무조건 반대’를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제화라는 명목으로 학생의 권리를 무시한 채 수치에 급급한 보여주기씩 영어강의, 체계적이고 질적인 발전이 수반되지 않는 영어강의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국제화가 의미하는 것이 영어화만은 아닐 것이다.

 

 

[기획 신정인 / 기자 글 이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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