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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명언·시

[시] 나는 날아올랐다._by.최금진

2012년 오늘의 시집으로 선정된 최금진 작가의 '황금을 찾아서'중에서
[나는 날아올랐다]라는 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기존에 고시조와 같이 운율이 있고, 멋스러운 느낌의 시가 아닌 우리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인 것 같아서 소개하고 싶었고, 이 시를 보면서 우리들도 삶을 시로 표현하고 기록하여 간직한다면,
언제라도 그때 그 감성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날아올랐다 - By. 최금진


구멍가게 우리집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고

그 구멍은 아무리 엿봐도 먹을 건 물컹한 고구마밖에 없고

일생 고구마나 먹으면서

팝송을 듣고, 기타를 치고, 가출한 엄마를 생각할 순 없다

굶은 새들은 깡충깡충 들판을 뛰며 사나운 이빨이 돋는다

atmosphere,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사전을 뒤지면

너는 우리집 앞길에 붉게 밑줄을 그으며 지나가고 있다

수건으로 유리창을 닦듯이 혓바닥으로

네가 다니는 갈을 맑게 닦아놓으면 누가 칭찬해주나

늙은 할머니를 꺾어다 네가 다니는 교회에 바치기도 했지만

내 방은 너무 환해서 캄캄한 바깥이 보이지 않으니

눈먼 하나님은 자꾸 나를 근심하였다

구멍가게 지붕을 이불처럼 덮어쓰고 앉아

외상값을 안 낸 사람들과

글씨를 못 읽는 조부모가 손으로 꼽아 계산하는

아버지 기일에 대해 내가 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지

술꾼들이 늙은 할머니 가슴을 더듬는 구멍가게

그 문구멍으로 나는 너를 배웠다

커다란 십자가 귀고리를 한 네 언니와

밤마다 추운 교회 바닥에서 흐느끼는 네 착한 오빠

슬퍼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지만

일생 받을 복을 슬픔으로 다 환산해서 받아먹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저녁이면

너덜너덜한 미역다발이나 끓여먹어야 한다

구멍가게는 구멍과 가계(家系)로 나뉘어지는데

우리집 가계는 전부 구멍뿐이고

함부로 날뛰는 길들을 다 줄로 묶어 데리고

저기, 모퉁이를 돌아 어둠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너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눈송이에 달린 흰 이파리를 똑똑 따내면서

atmosphere, 나는 영어책을 타고 교회당 종탑까지 날아올랐다

하나님이 배고픈 나를 귀여워하셔서

눈이 녹아 더러워진 크리스마스를 내 입에 잔뜩 넣어주셨다

아아, 그렇습니다, 모든 게 다 사랑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늘 아무데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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