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런 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확신하는 순간 말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내성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것에 무뎌져갈 때, 정작 힘겨운 날, 그 둘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을 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서로를 위했던 ‘무뎌진 이해’가 도리어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나는 그/그녀를 이해할 수 있어!’란 믿음은 관연 가능 할까요? 설렘으로 가득했던 시작. 흔히 눈에 콩깍지가 껴서 그/그녀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 때, 우리는 ‘사랑하기에’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만 할까요.
누구는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고 말합니다. 또 누구는 '그/그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을 그만 둔다'고 말하기도합니다. 사랑과 이해. 그렇습니다. 그 둘은 마치 서로의 보완재이면서 대체재인 것처럼 사랑이 이해를 무뎌지게 하기도 하며, 이해가 없으면 사랑이 끝나기도 합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헤어졌습니다. “라면 먹고 가. 자고 갈래”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은수에게 정말 라면만 먹고 가는 ‘소년감성’ 상우는 처음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는지 모릅니다. 새벽 강릉에 와서 포옹을 요구하고, 출근 전 잠을 더 자려는데 자신이 한 밥을 먹으라하는 상우.
결국,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말을 끝으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습니다.
허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행복’은 그것을 더 아프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 포스터에 과감히 ‘사랑, 그 잔인한 (행복) 변치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이라 쓰고, 영수(황정민)가 아픈 은희(임수정)를 잔인하게 떠나는 결말을 서슴없이 보여줍니다.
사랑은 이처럼 변하는 것일까요. 이해의 무뎌짐은 항상 이런 결말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이해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살아간다고 합니다. 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 헤어진 연인에게 까지 우리는 이해 받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를 제외하더라도 당장 가장 가까이 있는 연인에게서 이해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의 무뎌짐’속에서 은수와 영수는 사랑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는 ‘위험한 소년’ 상우를,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산소 호흡기를 대줘야 하는 ‘아픈’ 은희를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렇습니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이해는 사랑으로도 힘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해의 무뎌짐’보다, 그냥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노희경 작가님이 각본을 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이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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