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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896. 07. 02 - 독립협회 결성

 

출처 : http://cafe.naver.com/sama32/171

 

 

1. 조직

 

독립 신문을 간행하고 있던 서재필과 개화파 지식인들은 자주 독립을 목적으로 독립협회를 조직하였다. 자본주의 열강 침탈과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품은 도시의 시민들이 주요 구성원이었습니다. 학생, 노동자, 부녀자, 해방된 천민 등 광범위한 사회 계층인 민중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을 할 수 있었지요. 또한 왕실에서도 거금을 지원해주었고 관리들도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2. 활동 방향

 

독립 협회의 활동 방향은 나라의 자주 독립을 지키고, 국민들의 자유 민권을 증대시키며, 개혁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자강 개혁운동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3. 활동 내용

 

① 자주 독립 의식 고취 : 독립 신문으로 국민들을 계목하고,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독립문을 세우며, 토론회와 연설회를 자주 열어 국민의 자주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② 이권 수호 운동 : 여러 나라들이 우리 나라의 이권을 빼앗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③ 고종 환궁 요구 : 러시아 공가관에 머물어 있는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였다.

 

독립협회는 조선조 건양 1년에 조직된 정치 사회 단체이다. 이 단체는 서양 문물과 서구식 제도의 도입하여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적 자주 독립을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발족되었다. 처음에는 이온용, 안경수 등 정부 안의 개화파 관료들이 다수 참여 하였으나 점차 자주 개혁과 내정 개혁을 표방한 서재필, 이상재, 이승만, 윤치호 등이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독립문을 건립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1898년에는 만민공동회로 이름을 고치고 6개조의 내정 개혁안을 건의했으나 이루지 못한 채 이듬 해에 해산 되었다. 뒤에 이 이름은 황국협회가 되었다.

 

4. 해산과정

 

보수파들이 독립협회의 정부시책을 비판하는 것에 위협을 느껴서, 보수파들은 고종에게 독립협회가 군주제를 없애고 공화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모함함으로서, 고종이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즉 황제폐위설에 놀란 고종은 결국 1898년 11월 독립협회 해산령을 내리게 되고, 간부들이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한제국의 성장을 두려워한 일본이 독립협회 지도부의 일부 친일인사를 사주하여 반정부투쟁을 벌이도록 유도하면서 변질된 사건이었지요. 또한 만민공동회라는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에 보부상으로 이뤄진 황국협회에게 만민공동회를 습격하라고 시킴으로서 독립협회가 혁파됩니다.

 

5. 의의

 

자주 근대적 운동이었으며 민족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의식형성에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약한 지지기반과 친미. 친러적인 성향 그리고 열강들의 이권침탈을 자원개발로 보는 한계, 반봉건, 반제국운동의 중요부분이었던 농민군과 의병에 대해 적대적이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