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07. 08. 27 - 마지막 황제 순종, 경운궁에서 즉위

 

순종은 한국 역사상 최후의 군주로
고종의 유일한 적자이자 장자로 명성황후 민씨 소생이며, 후사는 없다.
어려서부터 병약하였으며 일본인에게 매수된 내관이 그가 마시던 홍차에 독을 타서 건강을 잃게 했다.

1907년에 고종은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등을 비밀리에 밀사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헤이그 밀사 사건 실패 이후, 일본과 친일파의 압력으로 고종은 강제로 제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순종이 제위에 올라 연호를 융희(隆熙)라 하였다.
그러나 그를 정식 군주로 인정하지 않던 일부 세력은 그를 황제나 주상이라 부르지 않고
전각의 이름을 따서 창덕궁 전하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무렵 일본이 러일 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다른 식민지 열강 세력을 몰아내고
대한제국의 이른바 후견국을 자처하면서 한일 합방의 발판을 공고히 하였다.
이후 1909년 기유각서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제국 황제 순종 임금의 실권은 2년만에
제2대 조선 통감 소네 아라스케에게 박탈되고 허수아비 임금의 신세가 되었다.
뒤이어서 1910년 제3대 조선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대한제국의 실권을 쥐며 순종은 역시 실권없는 왕에 머물렀고
결국 같은 해, 경술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 조선 왕조는 멸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한일 합방 조약 체결 당시, 일제는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순종은 조약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으며, 8월 22일 결국 당시 총리대신인 이완용이 이에 대신 서명하였다.
황제가 직접 동의하지 않은 조약이기에 실효성이 없는 불법조약이지만, 이미 대한제국은 아무런 힘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더불어 조선 왕조의 치세는 끝을 맺게 되었다.
이후 순종은 황제에서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거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