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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20. 03. 05 - 조선일보 창간

                                                                                                          (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

1920년 3월 5일 창간하였으며 창간 당시에는 친일 경제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기관지로 허가받아 사장 조진태, 발행인 예종석, 편집인 최강 등으로 출발했다. 발행 초기에는 경영난으로 발행인과 경영진이 자주 바뀌었으며, 초기의 반일적 논조 때문에 1920년대만 4차례 정간되었다. 

1924년 9월 신석우가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받던 이상재가 사장, 신석우가 부사장, 김동성이 발행 겸 편집인, 그리고 이사진에 안재홍·백관)·이상협 등이 취임하여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표어 아래 경영과 제작에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 때는 일제와 타협적이던 동아일보와는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띠었다. 좌파와 우파가 연합한 최대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홍명희 박헌영 등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조선일보에 입사하면서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뒤 신석우·안재홍·유진태·조만식 등이 사장을 맡았으나, 경영면에서 안정을 기하게 된 것은 1933년 방응모가 인수·운영하면서부터였다.

방응모는 신문경영을 맡은 후, 총액 50만 원의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태평로에 새 사옥을 짓는 등 과감한 사세확장을 꾀했다. 또한 1934년 1월에는 출판부를 창설하여 《조선명인전》 등 일반서적 간행과 함께 월간잡지 《조광》(1935.1), 《여성》(1936.4), 《소년》 등을 발행하였다. 한편 1929년 7월부터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표어 아래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남녀학생을 동원하여 한글보급반을 조직하고 문자보급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해마다 이 운동을 전개하여 일제 치하에서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과 함께 문맹퇴치, 농촌계몽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40년 8월 10일 일제에 의해 신문 발행이 강제로 중단되었다가 1945년 11월 23일에 복간하였다. 6·25전쟁 때에는 사장 방응모가 납북당되었고, 그후 장기영, 방일영과 방우영이 경영을 맡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


자매지로는《주간조선》《월간조선》《산》《월간낚시》《가정조선》《스포츠조선》《FEEL》(1993.9)이 있으며, 해외판으로는 미주판을 비롯하여 브라질판 시카고판, 밴쿠버판을 창간했다. 1988년 3월 5일에 정동별관을 준공하였고, 1989년 10월 14일 부산사옥을, 1994년 평촌사옥을, 1996년 성남사옥을 준공하였다. 1995년 (주)디지털 조선일보를 설립하였
다.

주식회사 형태로 납입자본금은 170억 원이다. 2007년 현재 조간 발행이다. 국내 총 1,688개 지사 및 지국을, 괌, 모스크바 등 25개의 해외 지사 및 지국을 두고 있다. 종사자수는 1,115명이며 주재지역은 부산, 대구 등 14곳이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정보화-환경운동, 전시·공연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옥은 서울시중구 태평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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