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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1983.08.21 -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 1983년 8월 21일 이 날은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총선 출마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니그노 아키노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 준비되어 있던 차량에 올라타기 직전 한 암살범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암살자는 코앞에서 아키노의 얼굴을 쐈습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과 군인들에게 사살당했습니다. 1984년 10월 중립조사위원회는 당시 필리핀군 참모총장 파비안 C.베르 장군이 꾸민 음모로 발표했지만, 필리핀 국민들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부가 범인과 관계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 필리핀 민주화의 시발점 당시 50세였던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는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기내에 동승한 기자에게 이렇게.. 더보기
1973.8.8-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 납치사건은 일본으로 망명 중이던 김대중이 1973년 8월 8일 오후 1시경 도쿄의 호텔 그랜드팰리스 2210호실 부근에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8월 13일에 서울의 자택 앞에서 발견된 사건입니다. 사건발생 당시 김대중은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 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한국 정보기관 요원 5명에게 납치, 수장(水葬) 직전 극적으로 구출되어 사건발생 129시간 만인 8월 13일 밤 10시 집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71년 대통령 선거 이후 박정희의 최대의 정적으로 등장한 김대중은 유신체제가 선포될 당시 지병 치료차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중 유신이 선포되자 귀국을 포기, 해외에서 반유신활동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미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정력적으로.. 더보기
1970. 03 .19 - 동서독 정상 분단 후 첫 만남 1970년 3월 19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동독 소도시 에르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초청을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짤막하게 인사를 나눴다. 분단 이후 동서독 정상간의 첫 역사적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전세계에서 5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와 취재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회담은 조용하게 진행됐다. 서독 총리 일행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의전행사도 일체 생략됐다. 공식 만찬이나 오찬도 없었다. 환영 플래카드도 걸리지 않았다. 동독 국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배려에서였다. 어렵사리 성사된 회담이었지만 난항이었다. 분위기는 냉랭했다. 동독은 동등한 관계 수립, 군비 50% 감축, 유엔 동시가입 등을 요구했고 서독은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의 양측이 선린우호 관계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