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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 첫사랑의 강-류시화 첫사랑의 강 -류시화- 그 여름 강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지 물속에 잠긴 발이 신비롭다고 느꼈지 검은 돌들 틈에서 흰 발가락이 움직이며 은어처럼 헤엄치는 듯했지 너에 대한 다른 것들은 잊어도 그것은 잊을 수 없지 이후에도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들은 많았지만 그 첫사랑의 강 물푸레나무 옆에서 너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많은 여름들이 지나고 나 혼자 그 강에 갔었지 그리고 두 발을 물에 담그고 그 자리에 앉아 보았지 환영처럼 물속에 너의 두 발이 나타났지 물에 비친 물푸레나무 검은 그림자 사이로 그 희고 작은 발이 나도 모르게 그 발을 만지려고 물속에 손을 넣었지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냈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 더보기
[시] 질경이-류시화 질경이 류시화 그것은 갑자기 뿌리를 내렸다. 뽑아낼 새도 없이 슬픔은 질경이와도 같은 것 아무도 몰래 영토를 넓혀 다른 식물의 감정들까지 건드린다 어떤 사람은 질경이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서둘러 뽑아 버릴수록 좋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머지않아 질경이가 인생의 정원을 망가뜨린다고 그러나 아무도 질경이를 거부할 수는 없으리라 한때 나는 삶에서 슬픔에 의지한 적이 있었다 여름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슬픔만이 있었을 뿐 질경이의 이마 위로 여름의 태양이 지나간다 질경이는 내게 단호한 눈짓으로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타인으로부터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라고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 8월의 해 시계 아래서 나는 나 자신을 껴안고 질경이의 영토를 지나왔다 여름.. 더보기
[시] 별에 못을 박다- 류시화 별에 못을 박다 류시화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더보기
[시] 옹이-류시화- 옹이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였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더보기
[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시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출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작성자 단미 더보기
[시] 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더보기
[시] 여섯 줄의 시- 류시화 여섯 줄의 시 류시화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 너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묻고 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말하렴, 네 숨 속에 숨은 진실을 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더보기
[시] 소금별- 류시화 소금별 류시화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더보기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中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 처럼 세상을 살기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 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 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 하고 싶다 더보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안에 있는 이여 내안에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