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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1948. 07. 24 - 대한민국 첫 대통령, 부통령 임기 시작 초대 대통령 이승만 1948년 5월 31일 구성된 제헌국회는 최고령자였던 이승만을 제1대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국회의장이 된 이승만은 윤보선을 자신의 국회의장 비서로 채용했다. 그러나 한민당에 의해 내각 책임제가 언급되자, 이승만은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하며 6월 16일 헌법기초위원회에 참석하여 대통령책임제 의사를 강력히 전달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후 헌법 제정과 함께 대통령 선거가 준비된다. 1948년 7월 20일 1948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김구, 안재홍, 서재필 등을 누르고 제헌 국회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초대 대통령 취임 선서7월 24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8월 15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중앙청에서 정부수립을 선포하였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 더보기
1960. 4. 27. 이승만대통령 하야 부정선거를 치른 대가는 하야와 망명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게 된 계기는 3ㆍ15 부정선거였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 도중 실종된 마산상고 입학생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 난동의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가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던 빨갱이론이 먹히질 않았다. 3ㆍ15 부정선거는 결국 4ㆍ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성난 시위대가 경무대(현 청와대)로 돌진하자 경찰이 총을 쏴 대규모 사상자가 생겼다. 그러나 시위대는 점점 늘어만 갔고, 미국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주한 미 대사 매카나기는 2..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