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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명언]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공자가 살아돌아 오더라도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강단 있는 모습과 사대주의에 빠진 사회를 개혁하려 노력 했던 모습은 높이 평가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더보기
1871. 03. 09 -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 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피폐된 국가경제를 살리고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47개의 서원만 남긴 사실을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남긴 서원의 면모를 보면 합리적인 원칙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해 서원을 탄압한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서원철폐령에서 남은 47개가 모두 서원은 서원 27개와 사당 20개이다. 주향자 별로 1개씩만 남겼으며 주향자는 조선시대 사람뿐만 아니라 신라인, 고려인, 중국인이 있었다. 남은 47개 서원/사당 중에 중국황제를 모신 곳은 단 한곳도 없으며 중국사람 중에서 배향된 사람은 유학의 발전이나 우리나라에 특별한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주향된 47명 가운데 생소한 사람은 무열사에 배향된 ‘상서 석성’이라는 중국사람이다. 상서란 .. 더보기
역사 속 1월 17일 BC37(신라 혁거세21) 경성을 쌓고 금성이라 이름 붙임 1627 정묘호란 일어남 1864(조선 고종 1) 이하응, 흥선대원군이 되어 섭정 시작 1930 서울 학생들 제2차 만세시위운동 1948 전기요금 6배 인상 1951 남한 정부와 국회, 유엔 정전안 반대(중국도 정전 거부) 1955 한미군사원조협정서 조인 1957 저작권법 국회 통과 1967 박정희, 연두교서에서 통일정책 언급 "통일의 길은 경제건설과 민주역량의 배양으로 우리의 경제, 우리의 민주주의가 북한으로 넘쳐 흐를 때 그것은 곧 통일이다." 1970 반도조선 아케이드에 대화재 1976 울릉도 근해에서 여객선 침몰, 37명 익사 1990 한국과 체코, 수교의정서에 가조인 1992 미야자와 일본 총리, 한국방문 중 정신대 문제 포함 과거사 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