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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epreneurship Journalism

[인물] 테란의 황제 '임요환'

방비가 없는 곳을 공격하고, 뜻하지 않을 때 나아간다.

 

손자병법 시계에 나오는 말입니다. 임요환 선수의 경기를 보다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말입니다.

 

                                                                                                      

                                                                                                      ⓒ 임요환의 드랍쉽이다

 

총전적 1033전 603–430 58.4%

 

VS 테란 284전 153–131 53.9%

 

VS 저그 433전 281–152 64.9%

 

VS프로토스 316전 169–147 53.5%

   

1퍼센트의 희망은 99퍼센트의 절망을 부순다

 

어린 시절 임요환은 축구와 오락실을 드나들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다가 성적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친구인 故 김진석 군을 찾아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학원 다니던 시절 임요환은 ‘PC방 죽돌이’로 살며 부모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지금의 프로게이머는 어느정도 수입구조가 정해져있고 상위 프로게이머들은 연봉도 상당하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사람이 많지만 이 시절에는 프로게이머라는 명함조차 없던 시절입니다.

온게임넷 해설을 하는 김태형위원 조차 “게임을 중계해요? 에이 그게 되겠어요?” 라는 말을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많은 게임을 하게 되었고, 레더 1위와 맞붙어 볼 생각을 했지만 그가 받아주지 않자 이에 고무된 임요환 선수는 거듭 연습을 하여, 레더의 상위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99년 8월 어느 날 PC방에서 혼자 게임을 하던 그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옵니다. 바로 김양중 감독입니다. “자네, 실력 좋다고 소문이 나있던데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건 어떤가?” 1%의 희망이 99%의 절망을 부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요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임요환은 프로게이머가 되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습니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당시 최강자였던 김대건에게 패배해 16강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십니다. 하지만 임요환은 곧 두각을 나타냅니다. 당시 가장 볼품없는 종족이었던 테란으로 주요 게임 대회를 석권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전략의 출발점

 

임요환은 게임큐 스타리그 올스타전 16강에서 강도경과 맞붙습니다. 마린 1기만 있는 상황에서 저글링 러쉬를 오자 SCV를 동반하여 저글링을 막는 수비방법을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일꾼은 자원캐고 건물만 짓는다”는 통념을 깨며 9드론 저글링 러쉬나 패스트 럴커에 맥없이 무너지던 테란유저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임요환이 치른 경기중 비난을 받는 것이 3연속 벙커링입니다. 팬들이면 누구나 기대하는 홍진호와의 4강에서 임요환은 3연속 벙커링으로 30분도 안되 홍진호를 3:0으로 셧아웃 시킵니다. 이 경기 이후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임요벙’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에게 그런 비난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게임은 실제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규정에 어긋나는 전략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 협회라는 것이 존재하고 심판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불법이 아닌 경우 어떤 전략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전략을 '속임수' 라고 비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임요환이 개발한 전략은 셀 수 없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임요환을 황제로 만든 109가지 전략' 을 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임요환을 황제로 만든 109가지 전략 바로가기 

  

 

테란의 황제도 대한민국의 남자

 

임요환은 2006년 10월 9일 전산 특기병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공군 게임단인 공군 ACE에서 활동하다 2008년 12월 21일 전역하였습니다. 임요환의 입대로 인해 당시 존폐 위기에 놓여있던 공군 ACE가 다시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역 후 SKT T1으로 복귀하였으나 컨디션 난조 및 실력 저하로 프로리그의 출전이 줄어들고 양대리그 예선에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팬들은 드디어 은퇴인가라는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2010년에 승부조작 사건중에 터진 열애설로 인한 후폭풍과 프로리그에 집중하여 다시금 재기를 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때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꽤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2010년 8월 7일 광안리 결승전, 팀원이라서 나오기는 나왔으나 정작 경기에는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결승전에는 애인인 김가연 그리고 자신의 부모까지 몸소 찾아왔었는데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경기 출전을 기대하던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앞으로의 그의 프로게이머 생활에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아졌습니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30대 프로게이머 선언이 빈말에 그쳐 팬들이 상심하게 만든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출발! 스타크래프트2 전향

 

임요환은 “직업적으로 경기를 펼치는 프로게이머는 팬들을 열광시킬 게임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대 후 기다려준 팬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던 과정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으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어가고자 한다”고 말하며 “열정이 그대로 팬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것이 내가 20대 프로게이머일 때의 모습과 다른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스타1’을 그만두고 ‘스타2’로 전향하는 것이지 결코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을 E-Sports의 중심에 서게 하다.

  

한국을 '세계 E-Sports의 수도' 로 만든 장본인이야말로 임요환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팀플레이 중심의 단조로운 스타크래프트 판을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다이나믹한 개인전 중심으로 바꾼 것도 임요환이며, 테란이라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줄로만 알려져 있던 종족을 끝까지 연구하여 무궁무진한 전략과 전술을 시연함으로써 판의 수준 자체를 끌어올린 것 역시 임요환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대한민국에 E-sports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테란의 황제 임요환 !

물론 아직 스타크래프트2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를 황제의 자리에 있게 해준 스타크래프트1은 얼마후면 TV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오는 2012년 8월 4일 결승전에 앞서 한국 e스포츠 최고의 라이벌전인 '임진록'이 레전드 매치로 펼쳐집니다.

어쩌면 결승전 보다 이 레전드 매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상의 황제, 시대의 개척자

 

한국 사회를 바꾼 스타 '임요환'

 

왜 영화나 독서는 취미가 되고 게임은 안되나?

 

30대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진정한 '스타'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는 '기록의 영역'을 뛰어 넘는다

 

                                                                                                                                                                     ⓒ 임요환의 드랍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