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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이슈

[사회]각시탈 사망자 아내, “‘추적자’ 주인공 된 기분”

보조출연자의 열악한 현실… “KBS와 언론이 우릴 가족사기단으로 몰고 있다”

“주위에서는 하나같이 원활하게 사후 처리가 됐을 것이라고 예상해요. KBS 드라마를 찍으러 가다 일어난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KBS <각시탈> 보조출연자 남편을 잃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윤씨.ⓒ미디어오늘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4월 18일 새벽 <각시탈> 드라마 촬영 장소로 향하다 버스 전복 사고로 숨진 보조출연자 박 아무개(49)씨의 부인입니다. 부인 윤아무개(41)씨는 지난 5월 18일부터 3개월 넘게 KBS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윤씨가 사고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후부터 1인 시위를 했던 이유는 모든 것이 잘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력을 다해 사후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KBS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유가족 당사자는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된 업체는 KBS와 드라마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보조출연자 파견 업체 태양기획, 버스 회사 동백관광입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태양기획에서는 상해보험도 들어놓고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장례를 치르고 왔는데 처음이랑 너무 말이 달랐어요.”

윤씨가 태양기획측에 상해보험 약관을 요구해 받아본 결과, 이 기획사에 소속된 보조출연자는 1000명이 넘는데 약관상 가입돼 있는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소속사측은 또 보조출연자는 근로자가 아니다”며 산재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유가족에 따르면 사고 당일 박씨를 포함해 29명도 중경상을 당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처리를 신청한 사람은 박씨 유가족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보조출연자를 근로자로 인정해 산재보험을 적용하라고 판결했었습니다. 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항고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확정 판결입니다.


사망한 보조출연자 박씨는 사고 발생 전날 밤 11시께 집을 나섰습니다. 그와 30여명의 보조출연자를 태운 버스는 이튿날(4월 18일) 새벽 1시께 KBS를 떠났으나 새벽 5시30분께 버스가 합천의 논두렁으로 추락해 전복하는 사고가 터졌습니다. 윤씨는 오전 8시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위독하다”는 말에 그는 합천으로 내려가려던 참에 남편이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그는 “사고 당일에도 마지막 가시는 분에게 예우를 안했다”며 “구급차도 아니고 승합차에 흰 천을 덮어서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윤씨는 합천 인근 병원에서 집이 있는 수원까지 남편의 시신을 승합차 뒷자석에 싣고 올라왔습니다.

윤씨는 특히 남편의 49제 때 난 언론 기사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KBS 드라마국장은 “미망인을 다른 곳의 보조출연자로 취직을 시키든지, 아니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노력해 볼 수 있다. 딸아이를 자꾸 데리고 와서 시위를 하는데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며 드라마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윤씨의 남편은 보조출연자로 일한 지 불과 2개월 반 만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젊은 시절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CF에도 출연한 적 있다는 박씨는 하던 일이 어렵게 되면서 보조출연자 일에 나섰습니다. “연예인 끼가 있는 딸을 위해 먼저 가서 길을 닦아놓겠다”는 각오에서였습니다.

윤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보조출연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애기 아빠가 몇 개월 동안 사람대접 못 받고 일 했구나 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며 “보조출연자의 열악한 환경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끝까지 싸울 겁니다. 돈 때문에 저런다며 가족사기단으로 몰리면서까지 싸우는 이유는 보조출연자들의 상황을 보니 도저히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입니다.”

윤씨는 사고 당일 남편 외에도 30명이나 사고를 당했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윤씨는 “KBS는 외주를 줬느니 하면서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남편은 각시탈을 구경하러 가다 사고가 난 게 아니다”라며 “KBS에 집합해서 촬영장으로 가기 위해 KBS가 대절해준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산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윤씨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태양기획으로부터 서류를 제출받아야 했는데, 몇 차례 요구 끝에 받은 서류에는 업체 직인조차 찍혀있지 않았습니다.

“돈을 원한 적도 없습니다. KBS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라고 물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원청이면 적어도 하청 업체 책임자에게 압력이든 지시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가족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다니요. 나쁜 사람들입니다.”

유가족은 KBS 등에 △김인규 KBS 사장과 이강용 태양기획 회장의 사과 △<각시탈>에 고인을 애도하고, 사후처리 미흡에 대한 사과 내용을 담은 자막 처리 △보조출연자들을 위한 대기실 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은 이런 요구사항만 받아들여진다면 바로 1인 시위를 접겠다는 입장입니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각시탈에 고인의 사망사고에 대한 유감의 뜻을 담은 자막을 내보내는 것은 사장님께서 적극 반영해주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각시탈 최종회에 자막으로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그러나 KBS가 각시탈 마지막 크레딧에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빈다’는 자막만 내보내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정확한 내막은 모른채 그저 “KBS가 유족들에게 신경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배 실장은 그러나 그 외의 요구조건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KBS에 사후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은 탈법적인 요구”라며 “사태가 원만하게 마무리되도록 법적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에게 권유하고 독촉하고 있지만 KBS는 법률적 책임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배 실장은 연기자 수송 도중 벌어진 일인 만큼 1차적인 법률 책임은 버스 회사에, 2차 책임은 보조출연자가 속해 있는 소속사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배 실장은 김인규 사장의 사과 표명 요구에 대해 “사과라는 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고 이후 법적 책임 문제가 따른다”며 “보조연기자와 법률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KBS에 사과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미디어오늘

“저나 아이들이 시위를 한다고 해서 아빠가 돌아오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1인 시위 밖에 없기에 이것이라도 할 겁니다. 앞으로도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나라는 보장이 없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사고를 겪어야 하고, 그 당사자라는 것이 저라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끝까지 싸울 겁니다.”

윤씨는 “각시탈이 종영돼도 지쳐 쓰러질 때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각시탈은 다음달 6일 최종회를 방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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