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47. 03. 12 - 트루먼 독트린 1947년 3월 미국 대통령 H.S.트루먼이 의회에서 선언한 미국외교정책에 관한 원칙. 그 요지는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자의 정부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당시 공산세력으로 인하여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그리스와 터키의 반공 정부에 대하여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원조가 제공되었다. 이 원칙은 그후 미국 외교정책의 기조가 되었으며, 유럽부흥계획과 북대서양조약으로써 구체화되어 갔다. (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 냉전과 양극화 냉전과 양극화의 주체는 미국과 소련이다. 이들 두 나라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곧 등장하였다. 1946년 3월 5일,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 더보기
1871. 03. 09 -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 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피폐된 국가경제를 살리고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47개의 서원만 남긴 사실을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남긴 서원의 면모를 보면 합리적인 원칙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해 서원을 탄압한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서원철폐령에서 남은 47개가 모두 서원은 서원 27개와 사당 20개이다. 주향자 별로 1개씩만 남겼으며 주향자는 조선시대 사람뿐만 아니라 신라인, 고려인, 중국인이 있었다. 남은 47개 서원/사당 중에 중국황제를 모신 곳은 단 한곳도 없으며 중국사람 중에서 배향된 사람은 유학의 발전이나 우리나라에 특별한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주향된 47명 가운데 생소한 사람은 무열사에 배향된 ‘상서 석성’이라는 중국사람이다. 상서란 .. 더보기
1908. 03. 08 - 세계여성의 날 매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 1975년 유엔에 의해 공식 지정됐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5천여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으나, 여성들에게는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굶지 않기 위해 일하면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아야 했다. “We want bread, but roses, too” 그들의 외침. 이후 여성들의 국제적인 연대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각국에서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남녀차별 철폐, 여성빈.. 더보기
1989. 03. 07 - 방송위원회 설립 1981년 3월 7일 ‘방송위원회'가 설립된 날입니다. ‘방송위원회’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자면,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유지 및 관리하기 위해서 신설된 우리나라 방송규제 기구입니다. 현재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기구가 방송통신위원회인데요. 처음 방송위원회로 시작하였다가 2002년 2월에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로 통합된 형태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변경 되면서 기존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기능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및 통신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요즘 몇몇 방송 컨텐츠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정부에서 공정성 있게 운영되는 기관인 만큼 국민들이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공정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보기
1883. 03. 06 - 태극기 정식 국기 제정 태극기의 유래에 관하여는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 그들이 편승한 일본 기선 메이지마루(明治丸)선에서 고안하여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는 잘 못 알려진 것이며, 국기 문제가 논의된 때는 이보다 앞선 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강화도 회담에서이며, 박영효 이전,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도 쓰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군주를 상징하는 어기로서 “태극 팔괘도”가 규장각에 있었다. 국왕을 상징하는 어기를 사용하던 조선이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청나라의 마건충이 쓴 《조선책략》에서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마건충이 제안한 조선의 국기인 ‘청룡기’는 청의 국기인 ‘황룡기’.. 더보기
1920. 03. 05 - 조선일보 창간 (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 1920년 3월 5일 창간하였으며 창간 당시에는 친일 경제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기관지로 허가받아 사장 조진태, 발행인 예종석, 편집인 최강 등으로 출발했다. 발행 초기에는 경영난으로 발행인과 경영진이 자주 바뀌었으며, 초기의 반일적 논조 때문에 1920년대만 4차례 정간되었다. 1924년 9월 신석우가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받던 이상재가 사장, 신석우가 부사장, 김동성이 발행 겸 편집인, 그리고 이사진에 안재홍·백관)·이상협 등이 취임하여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표어 아래 경영과 제작에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 때는 일제와 타협적이던 동아일보와는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띠었다. 좌파와 우파가 연합한 최대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결성을 주.. 더보기
1956. 03. 03 - 대한증권거래소 설립 1956년 2월 한국에서 조선증권취인소령에 의해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되어 1956년 3월 3일 개장하였는데, 구법에 의거해 편법적인 영단제조직으로 운영되다가 1962년 4월 1일 증권거래법의 실시에 의해 주식회사제로 바뀌었다. 그러자 과당투기와 대주주의 영향력과 압력의 증대로 증권거래소의 공신력을 위협하여, 1963년 5월 8일 주식회사제 대한증권거래소를 해체하고 특수법인체이고 공영제 비영리 조직인 한국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다. 한국증권거래소는 증권거래법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회원제조직으로 2000년 5월 기준 정회원 31개 사, 특별회원 14개 사를 가입시키고 있으면서 주식·채권·주가선물·주가지수옵션 등의 유가증권매매거래 시장을 운영하면서 유가증권의 공정한 거래와 유통의 원활을 위해 자율규제를 하고 있다.. 더보기
1909. 03. 02 -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결성 1909년 3월 2일 안중근 의사(1879~1910)는 연해주 지방에서 함께 의병활동을 하던 동지들 11명과 같이 모여 왼손 무명지를 끊어 그 피로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외치며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조국의 독립회복과 동양평화유지를 위해 헌신하는 단지회(斷指會:일명 단지동맹)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특히 안 의사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하기로 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에게 속죄하겠다고 맹세했다. 오늘날 안중근 의사와 단지동맹에 대해 뮤지컬 「영웅」에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더보기
1919. 03. 01 - 3.1 운동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기도 하다. 1. 원인과 배경 3ㆍ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의 저항으로 일어났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뒤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해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을 학살ㆍ투옥하고 모든 형태의 반일 활동을 탄압했다. 그리고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와 자유도 누리지 못하게 했으며, 조선태형령으로 가벼운 죄에도 가혹한 신체적 처벌을 가하여 인권을 유린.. 더보기
1885. 02. 29 - 최초의 근대병원 광혜원 1885년(고종 22년) 갑신정변 때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이 정변을 주도한 개화파 인사들에 의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고종이 민영익을 치료할 의원을 찾던 중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이자 마이애미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의사였던 호러스 알렌이 나타나 민영익을 살려냈다. 이를 계기로 서양 의학에 관심을 가진 고종은 알렌을 궁정의 시의관으로 임명하고,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서양식 근대 의료 기관인 광혜원을 설립(1885년 2월 29일)하도록 윤허하였다. 광혜원은 서양 의학을 사용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다. 또한 후에 광혜원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 올리버 에비슨에 의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 하였다가, 후에 미국계 개신교 학교인 연희전문학교 현재의 연세대학교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