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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881. 02. 09 -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사망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1월 11일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 마린스키 자선병원 의사인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와 어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사이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쪽이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의사의 신분은 중인 계급 정도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으며 매우 엄격하고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1838년 도스토옙스키는 공병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여 군사 교육을 받게 되었다.
소심하고 예민하며 병약했던 소년 도스토옙스키에게 군사 훈련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문학은 유일한 위안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습작을 서로 평가하고 논쟁을 벌이곤 하였다.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던 시기로 도스토옙스키도 이 때 프리드리히 실러에 빠져 있었다.

1846년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비평가 벨린스키로부터 '제 2의 고골리'라는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데뷔 전에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직접 작품을 건네받아 읽었던 네크라소프는 감동을 받은 나머지 밤 중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데뷔는 화려했을지 모르나, 이어서 발표한 《백야》와 《분신》 등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 때부터 서구주의 사상에 끌리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페트라셰프스키의 모임에 가담하였다.

1861년 형과 함께 잡지 《시대》를 발간하고, 《학대받는 사람들》, 《죽음의 집 기록》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듬해 발행 금지를 당하였다.
1864년 형과 함께 새로운 잡지 《세기》를 창간하였으나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1866년 걸작 《죄와 벌》을 완성하였다.
1867년부터 외국, 특히 드레스덴에 거주하면서 《백치》, 《악령》 등을 쓰고 귀국하였다. 1874년《미성년》을 발표하여 큰 돈을 벌어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옴스크에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동상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된 지병인 간질과 취미로 즐기던 도박 등이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간질과 도박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박은 그의 인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여 마감에 쫓기는 나날을 보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대로 받아적는 구술 필기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소설 이외의 저서로는 《작가의 일기》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잡지 《시민》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담당했던 문예란에 게재했던 것으로, 문예 지평, 정치·사회평론, 에세이, 단편 소설, 강연 원고, 교론 등을 포함하고 있어 훗날 도스토옙스키 연구에 귀중한 문헌 자료가 되었다.

1880년 그의 최후의 걸작인 장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하였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에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가족의 간호를 뒤로하고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네이버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