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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848. 02. 21 - 잔다르크의 교회 재판 시작되다




잔 다르크
(Jeanne d'Arc, 1412년 1월 6일 ~ 1431년 5월 30일)

1337년부터 프랑스와 영국이 프랑스 왕위계승권분쟁으로 시작한 전쟁은 1453년까지 116년 동안 계속되었다.
후일 '백년전쟁' 으로 불리는 이 전쟁의 중심에 한 소녀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에 밀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동 레미에 살던 농민의 딸 잔 다르크는 어느날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된다.

"샤를 왕세자를 도와 프랑스에 침범한 잉글랜드군과 그들의 동맹 부르고뉴를 몰아내고 프랑스를 구하라"

잔 다르크는 자신이 들은 바를 실천하기 위해 왕세자를 찾아간다.

한편, 당시 프랑스를 이끌고 있던 샤를 왕세자는 절망적인 전세앞에 좌절하여 시농성에 도피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역대 국왕들의 즉위식이 치러지던 랭스지역을 잃은 탓에 왕으로 즉위하지도 못한 그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한 소녀는 샤를 왕세자에게 말한다.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프랑스를 구원하겠노라고..

잔 다르크는 흰 갑옷을 입고 병사들 앞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했고 그녀가 이끄는 프랑스 병사들은 치솟은 사기로 영국군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 병사들에게 승리의 여신, 행운의 여신, 전투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그녀와 그녀의 군대는 숱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바람앞의 등불같던 프랑스를 구해낸다.

 


마침내 잔다르크는 랭스 지역을 탈환하는데 성공하고, 샤를 왕세자는 샤를 7세로 정식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영국군은 다시 무서운 기세로 반격을 시작해 왔고, 왕위에 오른 샤를 7세는 안일함에 빠져 잔 다르크를 외면했다.
잔 다르크는 결국 콩피에뉴 전투에서 패하고 잉글랜드와 동맹한 부르고뉴 군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부르고뉴는 잔 다르크를 잉글랜드 군대에 몸값을 받고 팔아 넘겼고 잉글랜드는 다시 샤를 7세에게 잔 다르크의 몸값으로 엄청난 금액을 불렀다.
하지만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몸값 지불 조차 외면했다.


몸값 협상이 결렬된 후 잔 다르크는 잉글랜드와 부르고뉴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곱 번의 재판 끝에 마녀, 이교도, 우상숭배의 죄를 뒤집어썼다.
잔 다르크는 끝내 자신에게 내린 신의 계시를 부정하지 않았고
결국 루앙 광장에서 화형을 집행당한다.
군중들이 유골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잔 다르크의 몸은 3번 태워졌으며 그 재는 센 강에 버려졌다고 전해진다.

이후 1456년에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의 마녀 혐의를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시켜주었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잔 다르크를 성녀로 시성하여, 가톨릭에서는 잔 다르크를 아르크의 요안나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