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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60. 03. 15 -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정권에 의해 대대적인 부정행위가 자행되었던 정·부통령선거.
사상유례없는 부정선거로 4·19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을 정·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미리 분석한 자유당정권은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는 전혀 승산이 없음을 알고, 관권을 동원한 대대적인 부정선거 계획을 세웠다.
한편 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대통령은 이승만의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그러자 선거의 초점은 당시 85세로 노령이었던 이승만의 유고시에 승계권을 가질 부통령선거에 집중되었다.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정부와 여당의 야당에 대한 선거운동 방해사건이 연일 계속되었다.

지시된 부정선거계획의 내용을 보면, 40%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에 의한
반공개투표, 유령유권자의 조작과 기권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투표, 내통식 기표소의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때의 혼표와 환표, 득표수 조작발표 등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음모는 한 말단 경찰관이 <부정선거지령서> 사본을 민주당에 제공함으로써 폭로되었다.
3·15부정선거 결과 이승만·이기붕 후보가 각각 88.7%와 79%의 득표로 정·부통령에 당선되었음이 공고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3월15일 마산에서 일어난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 이어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규탄데모가 벌어짐으로써 4·19로 이어졌다.


<자료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