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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71. 04. 10 - 미-중 핑퐁외교 시작

 

1971년 4월 10일, 같은 달 6일에 열린 제31회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탁구 선수를 비롯한 미국 선수단 15명과 기자 4명이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면담을 가진 데 이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을 순방하면서 미국과 중국에 교류의 징검다리를 놓은 사건을 핑퐁외교 혹은 탁구외교라 한다.

이 일을 계기로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으며
1972년 2월에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미국과 중국 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1949년에 중화 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로 미국 스포츠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냉전 체제하에서 국교도 없이 오랫동안 서로 적대 시 해온 미국과 중국이 갑자기 취한 '우호모드'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마오쩌둥은 그 전까지 "'미 제국주의'는 '소련 수정주의'와 함께 '최대의 적'"이라며 미국을 매도하도록 부추겨왔으나
1969년의 진보도 사건 등 중-소 국경에서 일어난 대규모 군사 충돌은 마오쩌둥의 불안감을 자극했고
소련의 군사위협이 심화 됨에 따라 마오쩌둥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소련의 위협에 대한 대응카드로 마오쩌둥은 미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소련과 냉전중인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국은 강력하고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핑퐁외교 수립의 배경으로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