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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1948. 07. 24 - 대한민국 첫 대통령, 부통령 임기 시작 초대 대통령 이승만 1948년 5월 31일 구성된 제헌국회는 최고령자였던 이승만을 제1대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국회의장이 된 이승만은 윤보선을 자신의 국회의장 비서로 채용했다. 그러나 한민당에 의해 내각 책임제가 언급되자, 이승만은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하며 6월 16일 헌법기초위원회에 참석하여 대통령책임제 의사를 강력히 전달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후 헌법 제정과 함께 대통령 선거가 준비된다. 1948년 7월 20일 1948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김구, 안재홍, 서재필 등을 누르고 제헌 국회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초대 대통령 취임 선서7월 24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8월 15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중앙청에서 정부수립을 선포하였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 더보기
1953. 06. 18 - 이승만 반공포로 전격 석방 1953년 6월 18일 새벽 0시를 기하여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남한에 수용 중인 북한 및 남한 출신의 반공포로를 석방한 사건. 그해 6월 8일 판문점휴전회담에서 체결된 ‘포로송환협정’에는 귀향을 원하는 포로를 휴전 성립 후 60일 내에 송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미방위조약 체결 전에는 휴전할 수 없다고 반대하던 이승만은 반공 ·애국 동포를 북한으로 보낼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그 협정을 묵살하였다. 마침내 이승만은 포로석방을 단행시켜, 영천 ·대구 ·상무대 ·논산 ·마산 ·부산 ·부평 등 7개 수용소에 있던 3만 7000명 중 2만 7092명의 반공포로 석방을 21일까지 완료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휴전교섭 파기를 위한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더보기
1919. 04. 1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영어: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 1948년) 1919년 9월 11일 일본의 침략을 피해 수립한 한반도 강제점령을 부인하고 국내외를 통할·통치하고 항일투쟁을 지휘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지에 설립된 한국의 임시정부들이 통합하여 발족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이다. 줄여서 임정(臨政)이라고도 부른다. 1919년 4월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3도 대표회의로서 결성된 한성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러시아령에 소재한 대한국민의회와, 상하이 임시정부 등과 통합하여 안창호, 여운형, 조동호, 여운홍, 김구, 김규식, 이동휘, 이동녕, 이승만 등에 의해 1919년 9월 대한민국 단일 임시정부로.. 더보기
1960. 03. 15 -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정권에 의해 대대적인 부정행위가 자행되었던 정·부통령선거. 사상유례없는 부정선거로 4·19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을 정·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미리 분석한 자유당정권은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는 전혀 승산이 없음을 알고, 관권을 동원한 대대적인 부정선거 계획을 세웠다. 한편 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대통령은 이승만의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그러자 선거의 초점은 당시 85세로 노령이었던 이승만의 유고시에 승계권을 가질 부통령선거에 집중되었다.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정부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