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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정신

1270. 08. 19 - 삼별초, 진도에 도착하여 항전 삼별초 [출처 : 위키백과] 원래 삼별초에서의 “별초”(別抄)란 ‘임시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 일종의 유격대를 말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는 정규군이 아니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삼별초는 처음에 최우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유래한다. 야별초는 1219년 최우가 권력 보호를 위해 조직한 사병이었는데, 뒤에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는 정규군으로 편성되었다. 그에 따라 야별초는 다시 좌별초, 우별초로 나뉘었으며, 몽고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오거나 탈출한 이들로 이루어진 신의군을 일컬어 삼별초라 불렀다.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최우의 무신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몽고에 맞서 항전한다. 몽고는 고려에게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요구하며 .. 더보기
1871. 03. 09 -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 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피폐된 국가경제를 살리고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47개의 서원만 남긴 사실을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남긴 서원의 면모를 보면 합리적인 원칙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해 서원을 탄압한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서원철폐령에서 남은 47개가 모두 서원은 서원 27개와 사당 20개이다. 주향자 별로 1개씩만 남겼으며 주향자는 조선시대 사람뿐만 아니라 신라인, 고려인, 중국인이 있었다. 남은 47개 서원/사당 중에 중국황제를 모신 곳은 단 한곳도 없으며 중국사람 중에서 배향된 사람은 유학의 발전이나 우리나라에 특별한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주향된 47명 가운데 생소한 사람은 무열사에 배향된 ‘상서 석성’이라는 중국사람이다. 상서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