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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270. 08. 19 - 삼별초, 진도에 도착하여 항전

삼별초 [출처 : 위키백과]

원래 삼별초에서의 “별초”(別抄)란 ‘임시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 일종의 유격대를 말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는 정규군이 아니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삼별초는 처음에 최우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유래한다.
야별초는 1219년 최우가 권력 보호를 위해 조직한 사병이었는데, 뒤에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는 정규군으로 편성되었다.
그에 따라 야별초는 다시 좌별초, 우별초로 나뉘었으며, 몽고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오거나 탈출한 이들로 이루어진 신의군을 일컬어 삼별초라 불렀다.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최우의 무신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몽고에 맞서 항전한다.
몽고는 고려에게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침략과 철수를 반복했고,
결국 고종은 1259년, 29년간의 항전끝에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약속하고,
태자(후일 원종)를 인질로 원나라에 보낸다.
1270년 음력 5월 원나라에서 귀국한 원종은 개경으로의 환도를 단행하였다.
이는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간 몽고에 맞서 결사항전을 해온 삼별초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고, 내부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원종은 삼별초에게 해산령을 내리고 그들의 명단을 거둬오도록 지시하였다.
삼별초의 연명부가 몽고군의 수중에 넘어가면 삼별초는 전멸당할 것이 뻔했고,
결국 삼별초의 지도자였던 배중손과 노영희 등은 원종의 해산령을 듣지 않고 항전을 결정한다.

삼별초는 1270년 8월 19일 대 선단을 이끌고 진도로 도착하여 새로운 도읍으로 정하고
그 뒤로 약 40년간이나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 맞서 항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