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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1920. 03. 05 - 조선일보 창간 (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 1920년 3월 5일 창간하였으며 창간 당시에는 친일 경제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기관지로 허가받아 사장 조진태, 발행인 예종석, 편집인 최강 등으로 출발했다. 발행 초기에는 경영난으로 발행인과 경영진이 자주 바뀌었으며, 초기의 반일적 논조 때문에 1920년대만 4차례 정간되었다. 1924년 9월 신석우가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받던 이상재가 사장, 신석우가 부사장, 김동성이 발행 겸 편집인, 그리고 이사진에 안재홍·백관)·이상협 등이 취임하여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표어 아래 경영과 제작에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 때는 일제와 타협적이던 동아일보와는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띠었다. 좌파와 우파가 연합한 최대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결성을 주.. 더보기
(인물)현진건(2) - 주당 현진건 현진건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다. 그는 술을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그 일화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 빙허 선생은 이 집에서 생계를 위해 닭을 쳤었다. 그가 자주 어울려 다녔던 문인들은 오가는 길에 양계사업을 하던 현진건의 부암동 집에 들러 달걀요리에 병든 닭을 잡아 안주삼아 밥 삼아 술을 마셨다. 애초에는 양계 백수로 근근히 호구지책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고 하지만 울적한 빙허를 찾아오는 술친구들의 토색장으로 닭 머리가 점점 줄어들어 난경에 빠지 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했던 양계가 술의 안주로 이용되어 생계에 곤란함이 생김) - 어느날 아침이었다. 어제 마신 술이 채 깨지 않고 출근길에 나선 현진건이 치통집을 들렀다. 현진건의 취한 목소리가 들리자 치통집 주모들은 모두.. 더보기
(인물)현진건(1) - 장안의 삼대 미남 빙허 장안 삼대 미남 중 하나로 키는 5척 3촌(약 160cm)이며 몸무게는 14관(약 52.5kg)이나 체격의 균형이 잡히어 있고 얼굴은 백옥 같이 희고 선이 곱고 눈썹이 검고 눈동자가 맑아 다소 찬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여자와 같이 아담한 얼굴이요 짐짓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다. 또한 눈발이 적고 예뻐서 귀인형이라 할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 키는 제외해도 요즘 누나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위의 남자 아이돌의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누굴까? 백미관의 ‘씨 뿌리는 사람들’에서 말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주의 작가 현진건이다. 사진으로 보면 위의 설명과 다른게 아닌가 싶지만 실제 만나보지 못한 이상 어떻다 딱 부러지게 말 할 수 없다. 여튼, 생김새는 중요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