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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

1960. 4. 27. 이승만대통령 하야 부정선거를 치른 대가는 하야와 망명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게 된 계기는 3ㆍ15 부정선거였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 도중 실종된 마산상고 입학생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 난동의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가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던 빨갱이론이 먹히질 않았다. 3ㆍ15 부정선거는 결국 4ㆍ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성난 시위대가 경무대(현 청와대)로 돌진하자 경찰이 총을 쏴 대규모 사상자가 생겼다. 그러나 시위대는 점점 늘어만 갔고, 미국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주한 미 대사 매카나기는 2.. 더보기
1960. 03. 15 -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정권에 의해 대대적인 부정행위가 자행되었던 정·부통령선거. 사상유례없는 부정선거로 4·19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을 정·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미리 분석한 자유당정권은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는 전혀 승산이 없음을 알고, 관권을 동원한 대대적인 부정선거 계획을 세웠다. 한편 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대통령은 이승만의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그러자 선거의 초점은 당시 85세로 노령이었던 이승만의 유고시에 승계권을 가질 부통령선거에 집중되었다.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정부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