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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Archive (Stalker)

(인물)현진건(1) - 장안의 삼대 미남 빙허

 장안 삼대 미남 중 하나로 키는 5척 3촌(약 160cm)이며 몸무게는 14관(약 52.5kg)이나 체격의 균형이 잡히어 있고
얼굴은 백옥 같이 희고 선이 곱고 눈썹이 검고 눈동자가 맑아 다소 찬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여자와 같이 아담한 얼굴이요 짐짓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다.
또한 눈발이 적고 예뻐서 귀인형이라 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샤이니>

얼핏 들어보면 키는 제외해도 요즘 누나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위의 남자 아이돌의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누굴까? 백미관의 ‘씨 뿌리는 사람들’에서 말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주의 작가 현진건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현진건>

사진으로 보면 위의 설명과 다른게 아닌가 싶지만 실제 만나보지 못한 이상 어떻다 딱 부러지게 말 할 수 없다. 여튼,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남긴 작품이나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에게 큰 의미이고 가치인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운수 좋은날>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왜 먹지를 못하니>


위의 사진들을 보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거쳤다면 빼놓고 공부한 ‘운수 좋은날’이다.
위의 인력거를 모는 이의 사진은 운수 좋은날의 주인공 김첨치를 떠올리게하고 밑의 패러디 만화는 김첨치가 죽은 아내에게 설렁탕을 먹으라고 했지만 먹질 못하자 ‘왜 먹지를 못하니’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 사진들이 사용된 글들의 제목은 대부분 ‘운수 좋은날’이다. 그리고 사진 한 장 달랑 있다. 부가 설명이 없을 정도로 그만큼 모르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작을 남긴 현진건의 삶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1900년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현경운의 4남이다. 일본 도쿄에서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 외국어학교를 다녔고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했으며 ‘빈처’,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문학가로써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하지만 그에겐 기자라는 직업도 있었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함으로써 기자로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이미지 출처 - 동네(동아 미디어 그룹 공식 블로그)> 맨 왼쪽 앞이 현진건

동아일보사에서는 사회부장을 지내기도 했었다. 그는 글도 잘 쓰고 제목 붙이기 편집에도 능했다고 한다. 특히 총독부 관리들의 정곡을 찌르는 제목이나 일본에게 거슬릴만한 제목을 잘 썼다고 한다. 그의 성격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기자로 활동할 때 유명한 사건이 있다. 바로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이 일본 대표로 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에서 그의 유니폼 가슴에 박힌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을 발행했던 사건이다. 이 당시에도 현진건은 사회부장으로 있었고 이 사건의 직접 책임자로 잡혀 문초를 겪고 결국 사직까지 하고 만다.


<이미지 출처 - 일장기 말소 사건(네이버 지식사전)>

by  Utok_Adam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