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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이슈

[스포츠] 언론의 도넘은 박주영 때리기

ⓒ박효상



지난 2005년 대구, 동아시아컵 한일전. 

6만여 명을 수용 할 수 있는 대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연호합니다. 

이제 만으로 20살을 갓 넘긴 프로 1년차 스트라이커 박주영. 

그가 나오면 끌려가던 경기도 한 번에 뒤엎을 수 있을 것처럼 이방인 감독에게 6만여 명이 입을 모아 훈수를 둡니다. 

성화에 못 이겨였었는지 감독의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혜성처럼 등장해 운동장을 내 달렸던 어린청년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중들은 열광했습니다.

 팀은 패배했지만 모두가 상심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시골 촌놈이던 제가 그 광경을 직접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현장의 6만명, TV로 보고 있는 그 이상의 사람들의 지지 속에 운동장을 달렸던 그때의 어린 청년은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이자 영웅이었고 미래였습니다.


2014 월드컵 최종예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는 최강희 감독. 많은 논란 속에 박주영의 이름은 없었다.


또 다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2012년. 

바로 어제 5월 17일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를 대표팀 명단에 그때의 어린 청년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빅리그로 깜짝 이적을 하면서 기대감을 한껏 높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못하고, 

게다가 한국사회의 민감한 사안인 ‘병역’을 꼼수로 연기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에서 “아시아 최고의 트러블메이커”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언론을 통해 나오는 기사들만 보아서는요.



2005년에는 어린선수에게 찬사와 함께 구국의 영웅이 되라는 짐을 짊어 지어주더니 

2012년에는 매국노나 반역자라도 되는냥 비난과 문제점을 들추어 내고 있습니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그에게 ‘추락’, ‘파국’, ‘증발’, ‘잠적’, ‘나라망신’이라는 직접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인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인’은 누가 정한 걸까요? 그들이 말하는 ‘국민정서’는 어떤 국민을 말하는 걸까요? 

엄밀히 그는 그저 ‘축구’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직업인입니다. 

병역회피 의도가 없을뿐더러 반드시 병역의무를 수행하겠다고 공식적인 약속을 한 상태에 있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한쪽의 의견만을 두고 ‘온 국민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 언론의 태도는, 

뛰어난 기량을 보유했지만 인터뷰에 잘 응해주지 않고 소식을 알기 어려운 선수에게

 ‘괘씸죄’를 뒤집어 씌워 “내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힘을 과시하고 있는 현상으로도 보입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이 있었음에도 적극적 해명을 하지 않은 박선수의 처신이 아쉬운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한명의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비난은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논란을 만들고 확대 재생산해 내는 언론과 

선수를 보호함이 더 자연스러운 축구협회는 

여론의 비난이라는 부담을 떠안기 싫어 범법자 취급까지 합니다. 

그는 ‘골’이라는 기쁨과 환희를 우리에게 주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주고 있나요. 

국가를 위해 기꺼이 10시간이 넘는 비행과 

그로 인한 피로도, 시차적응 문제를 다 견뎌내고 

우리 땅에서, 또 머나먼 이국 땅에서 땀 흘렸던 그에게, 

우리는 지금 어떤 식으로든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 바라보았다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에게 인내심이 좀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 Utokpia_Daniel

(UtokpiaDani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