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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99. 06. 15 - 서해교전. 제 1 연평해전


오전9시25분쯤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북방한계선(NLL) 넘어온 북한해군함정과 우리 경비정 교전. 

북한 어뢰정 1척 침몰, 경비정 5척 대파. 북측사상자 수십 명. 우리는 고속정 등 5척 약간 부서지고 9명 다침



1999년 6월 6일부터 북한 경비정이 매일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몇 시간씩 한국 영해에 머물면서 반응을 살피고 돌아가고 있었다.

이후 6월 15일 북한의 움직임이 9일째 되는 날인 오전

 경비정 4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 해역까지 내려왔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하여 

해군 교전 수칙에 따라 경고 방송 이후 오전 9시 7분과 9시 20분 두 차례에 걸쳐 

선체를 충돌시키는 밀어내기 경고를 실행하였다.


선체 충돌을 당한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는 25㎜ 기관포로 공격을 가해 왔으며, 남한 어뢰정 3척도 가담하였다. 

결국 등산곶 684호는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포항함의 반격으로 반파되어 퇴각하였다.


이날 교전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의 정장 안지영 대위가 부상을 입고, 대한민국 장병 7명이 부상당해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북한군의 어뢰정 등 함정2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되어, 최소 70여명~200여명의 사상자가 있었으리라 판단 추측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교전이 있은 지 1시간이 채 안 된 6월 15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상 교전문제가 거론되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만 드러낸 채 아무런 성과는 없었다. 

이 회담에서 북한측은 한국 쪽이 먼저 도발을 해왔다는 억지 주장을 펴는가 하면, 

더 나아가 북방한계선과 관련해서도 다른 주장을 들고 나왔다. 

즉, 북방한계선이 국제법상 북한에서 12해리 이내이기 때문에 함정이 출동한 지역은 북한 영해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남북한 양쪽 모두가 한반도 동서 해상의 실질적인 경계선으로 인정하여 

그 동안 한국의 관할구역으로 인식되어 왔던 북방한계선을 무시하고, 

12해리 영해를 주장함으로써 영해문제를 다시금 부각시키려는 북한의 전술적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있다.




북한 해군은 교전에서 생존해 돌아온 등산곶 684호의 갑판장을 새 함장으로 임명하였으며,

 대한민국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였다. 


당시 교전을 지휘한 대한민국 해군 제 2 함대의 사령관이던 박정성 제독은 이후 보직을 옮겼으며 

수참모부장과 정보·작전참모부장을 거쳐 군수사령관(소장)으로 전역한것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운 순국선열의 명복을 빕니다.


ⓒUtokpia_Daniel


UtokpiaDani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