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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83.08.21 -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

1983년 8월 21일
이 날은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총선 출마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니그노 아키노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 준비되어 있던 차량에 올라타기 직전 한 암살범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암살자는 코앞에서 아키노의 얼굴을 쐈습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과 군인들에게 사살당했습니다.
1984년 10월 중립조사위원회는 당시 필리핀군 참모총장 파비안 C.베르 장군이 꾸민 음모로 발표했지만,
필리핀 국민들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부가 범인과 관계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 필리핀 민주화의 시발점
당시 50세였던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는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기내에 동승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리적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암살이란 것이 공공 서비스의 하나인 나라니까요.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죠. 암살자의 총탄에 죽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그렇게 되라죠.”

아키노가 웃으면서 예감한 자신의 운명은 1983년 8월21일 마닐라 공항에 내리면서 그대로 실현됐다. 괴한의 총구가 다음해 총선에 나서기 위해 귀국한 야당 지도자의 머리를 향했다. 당시 필리핀을 지배했던 독재자 마르코스 정부는 범인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으나, 필리핀 국민은 정부의 발표를 고스란히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아키노의 장례식에는 수백만 군중이 몰려들어 마르코스를 규탄했고, 이는 필리핀 민주화의 시발점이 됐다. 3년 뒤 ‘피플 파워’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폭발해 마르코스와 그의 사치스러운 부인 이멜다는 조국에서 쫓겨났다.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는 필리핀의 새 대통령이 됐다.

젊은 시절의 아키노는 다양한 경력을 거쳤다. 17세엔 종군 기자로 한국전에 참여했고, 22세엔 시장이 됐다. 27세엔 부지사, 29세엔 도지사, 34세엔 상원의원이 됐다. 모두 최연소 기록이었다. 72년 마르코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아키노를 제일 먼저 잡아가뒀다.

아키노의 투쟁은 이웃 아시아의 많은 민주 지도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감옥에서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했고, 사형 선고를 받았고, 부정 선거에 항의했고, 해외로 추방당했고, 결국 조국으로 돌아온 뒤 암살당했다.

베니그노 아키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두 정치인은 80년대 초반 미국 망명 시절 친교를 맺었다. 아키노는 아끼던 수동 타자기를 김 전 대통령에게 선물했고, 이 타자기는 현재 김대중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코라손 아키노가 암 투병 끝에 이달 1일 타계한 데 이어, 김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했다. 아시아 민주화의 거목들이 하나둘씩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이다.

출처 : 경향신문, [어제의 오늘]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201804425&code=100100 

아키노 동상 © Naver ys.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