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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62.8.31-대한민국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가 막사이사이상 수상

막사이사이상:

막사이사이상(-賞, Ramon Magsaysay Award)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1957년 4월 제정된 국제적 상을 말한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장준하(1962년), 김활란(1963년), 김용기(1966년), 이태영(1975년), 윤석중(1978년), 장기려(1979년), 엄대섭(1980년), 강정렬 (1981년), 제정구 (1986년), 김임순(1989년), 오웅진 신부(1996년), 법륜스님(2002년), 시민운동가 윤혜란(2005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원순(2006년)이 있다. 2007년에는 김선태 목사가 공공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장준하의 삶>

 

장준하 선생은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연하동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기독교 목사인 장석인과 김경문 사이에서 4남 1녀 맏이로 태어나 어릴 적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대관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에 있는 숭실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부친의 전근지를 따라 신성중학교로 전학하였습니다.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하려다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교되어 1938년 정주에 있는 신안소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습니다. 3년간의 교사생활로 학교의 발전을 도우며 학생들을 가르쳤으나1941년에는 고등신학교육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대학 예과와 니혼 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42년,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일본은 조선인 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하기 시작하자 장준하 선생은 일본 유학을 서둘러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44년 1월 20일, 장준하 선생은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조선군사령부 39여단 42연대에 배속되어 중국에 배치되었던 선생은 6개월이 지난 7월 7일, 홍석훈, 김영록, 윤경빈 등과 함께 탈출하여 중국중앙군관학교 인천분교 한국 광복군 훈련반에 입대하였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그 곳에 있던 김준엽을 만나 '등불'이라는 필사본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1944년 11월 30일 한국광복군은 장준하 선생이 있던 곳을 떠나게 되었고 선생과 김준엽이 발행하던 잡지의 발간이 중단되었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도보로 임시정부가 있던 충징으로 떠나기로 결심하였고, 만 2개월인 1945년 1월 30일이 되서야 충징에 도착하였습니다. 충징에서 장준하 선생은 김구 주석을 만났습니다. 이 후 4월 서안광복군 제 2지대 이범석 휘하에 들었다가 한국으로 잠입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된 미국 OSS대원으로 자원하여 특수게릴라 훈련을 받고 이 곳에서 교포들의 친목지인 '제단''을 발간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8일 장준하 선생은 연합군사사절단의 일원으로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와 함께 미군기로 여의도에 착륙했으나 일본군의 거부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1월 23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주석 김구의 수행비서로서 미국 수송기편으로 귀국했습니다.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의 교무처장으로 잠시 정치활동을 하다 일찍이 못다한 학업을 위해 1948년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출판사 한길사를 설립하여 문화사업도 겸하였습니다.

 

                                                     (1955년과 1956년 초창기 '사상계' 를 이끌었던 장준하선생과 그 사단)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한 뒤 1952년 9월 국민사상연구원에서 '사상'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였으나 정치계의 방해로 폐간되자 1953년에는 피난지에서 무일푼으로 '사상계'를 창간하였습니다. 이 '사상계'는 정치계를 비판하여 이후 국내 지식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사상계'는 앞서 그랬듯이 혁명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장준하 선생과 '사상계'는 위기에 내몰리게 되지만 1962년 한국인 최초로 막사이사이 언론상을 수상하면서 언론적인 업적을 인정받게 됩니다.

1967년에는 정계에 입문하여 제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가 1971년에는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 사장으로 복귀하였다가 1973년에는 민주통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출처- 방과 후 보훈Star http://cafe.naver.com/bohunstar/18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