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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86.09.20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개막

 

27개국 4,800여 명의 아시아 선수들이 ‘영원한 전진(Ever onward)’이라는 표어 아래 25개 종목에 걸쳐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16일간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1979년 서울대회 유치 희망을 공식 발표한 뒤 1981년 아시아경기연맹 총회에서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이 대회의 운영기술 및 경험 축적은 2년 뒤에 열린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회에는 모두 33개 경기장과 54개 연습장이 이용되었다. 경기장은 기존시설 20개를 보수·활용하는 외에, 1984년에 올림픽주경기장과 수원실내체육관을 완공했다. 서울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지은 선수촌은 5,000명 수용규모의 아파트 18개동과 대형식당·국제센터·종교관·병원·행정센터·본부건물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메인프레스센터는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어 국내외 보도진을 지원했고, 아시아방송센터에는 30여 개국에서 55개 방송국이 참여했다.

대회운영에는 각 분야 요원 1만 9000명과 자원봉사자 5만 4000명이 참여했고, 운동경기 외에 32개 공식행사와 20여 개 비공식행사로 꾸며진 문화예술행사가 열렸다.

경기종목은 육상·수영·양궁·배드민턴·농구·볼링·복싱·사이클·승마·펜싱·축구·골프·체조·핸드볼·하키·유도·조정·사격·탁구·태권도·테니스·배구·역도·레슬링·요트로서, 올림픽경기대회·아시아경기대회는 물론 역대 국제경기대회사상 가장 많은 경기였다. 36개 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고 금메달수는 모두 269개(육상 42개, 수영 34개)이다. 1위는 금메달 94개의 중국, 2위는 금메달 93개의 한국, 3위는 금메달 58개의 일본이 차지했고 이란(금메달 6개)과 인도(금메달 5개)가 4·5위를 차지했다.

 

기록면에서는 세계신기록 11개, 세계타이기록 2개가 수립되었다. 한국은 기록경기인 육상·수영·양궁·사격 등과 투기, 개인경기인 복싱·태권도·유도·레슬링 등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이전까지 경기수준에서 중국·일본에 뒤처지던 것과는 달리 일본을 제치고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벌였다. 구기종목인 축구·하키·테니스·탁구·배드민턴·핸드볼 등에서도 아시아 정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부분적으로 대회의 준비·운영이 미흡했던 점을 지적받기도 했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했다가 반납한 불명예를 깨끗이 씻었다. 한국은 경기력의 향상과 함께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누르고 아시아 스포츠강국으로서 위치를 다졌음은 물론, 아울러 한국의 발전상과 국력을 세계에 인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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