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Literacy (Amoeba)

[사회]'왕'의 착각에 종업원들은 벌벌 떤다

'왕'의 착각에 종업원들은 벌벌 떤다

 

 

ⓒ연합뉴스

▲ 강요된 친절은 한국사회를 파괴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유명백화점 명품관 모습.

 

 

언제부턴가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상식이 됐다. 이 말은 사실일까? 손님이 왕인지 아닌지는 각자 혈통을 따져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왕은 카트를 밀며 장을 보지 않는다. 종업원과 옥신각신 다투지도 않는다. 
 

'손님은 왕'이란 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일본 상인들 사이에서 격언처럼 사용되어 온 말이기도 하고, 피터 드러커가 경영학계에

널리 퍼뜨린 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아예 '고객은 왕'을 넘어 '고객은 신'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이 말을 누가 처음 썼는지는 알 길 없으나, 분명한 것은 '고객은 왕'이라는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꽤 많은 경영 전문가들이 이 말을 '왕'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낡은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객 비위 맞추기에 초점을 두는 마케팅 전략은 별 효과가 없을뿐 아니라,

자칫하면 사업 자체를 위험 속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이 애용하는 "고객이 '오케이' 할 때까지"라는 슬로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표어는 한국 재계의 케케묵은 사고를 보여줄 뿐이다. 한국 기업들이 지겨울 정도로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는 것은, 고객을 끔찍이 아껴서라기보다는 경영진의 무능함을 덮기 위해서다.

 

투자와 혁신을 통해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판매원들이 얼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웃지 않아도 잘만 사간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보라. '서비스'는 커녕, 욕을 바가지로 먹고, 바가지로 얻어 맞으면서도 먹는다.

애플도 잘 보여 주고 있듯, 최근 부상하는 마케팅은 오히려 '고객이 안달할 때까지'다.

 

"고객이 '오케이' 할 때까지"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고객이 '오케이'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 알지 않는가.

고객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무례하고, 감정적이고, 탐욕스럽고, 뻔뻔한 존재인지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안락한 회의실에 앉아 '고객 제일주의'를 기획한 장본인들이 고객의 욕설과 포효를 직접 받아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험한 일은 박봉의 직원들에게 돌아가고, 경영진은 이들을 감시하고 처벌할 뿐이다. 고객이 '오케이'할 때까지.

 

친절 강요하는 사회

 

최근 한국에 와서 은행카드 발급신청을 했다. 거래하는 은행 지점에 들러 안내를 받으며 신청서를 써서 냈다.

자상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 주어 고마웠지만, 마음만은 편치 못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게 왜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정상적인 사람이므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학 성향은 아닌 듯하니) 당연히

친절한 게 좋다. 문제는 이 친절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데 있다.

 마지 못해 베푸는 서비스를 즐기면서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가학 성향이다.

 

한국 기업이 자랑하는 '친절 서비스'에는 생존의 절박함이 묻어난다. 기업의 절박함이 아니라, 서비스를 베푸는 직원 개인의 절박함 말이다.

게다가 이 친절은 같은 친절로 보답 받지 못한다. 스스로 왕이라고 믿는 손님으로부터도, 직원의 명줄을 쥐고 있는 고용주로부터도.

 

 

ⓒ연합뉴스

▲ 한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에서 서비스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들.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있던 일이다. 시식용 과일을 권하는 점원을 지나쳐 가는데, 손님 한 명이 샘플을 받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점원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손님은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뱉고, 점원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이유가 어떻든, 고객의 태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독이 든 과일을 받아 먹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손님과 점원이 만나는 건 어느 한 쪽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다. 고객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손님과 점원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 도움을 베푸는 계약관계에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건 당연하다.

양자 모두가 사람이라면 말이다. 어느 한 쪽이 '왕'이고 어느 한쪽이 '종'일 수 없다. 

 

폭정을 일삼으면 왕의 목도 치는 마당에, 왜 직원이 고객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와 무례를 끝까지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뒤에서 자세히 살피겠지만, 고객에 대한 '무한 친절'은 직원과 회사는 물론 고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친절의 강요가 한국사회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고용주는 차별화도 안 되는 고만고만한 상품을 내놓고 직원들에게 몸으로, 모욕으로 때우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고용불안을 악용해 '너 아니어도 쓸 사람은 널렸다'는 뻔뻔한 태도로 직원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제 목을 조르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용불안정을 만든 주범이 기업 아닌가.

 

그리고 손님은 유세 떨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생존을 무기로 친절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해야 할 무례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 원문 기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6920&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백화점·마트 "손님의 애완견도 왕"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5687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