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조선일보>
섣부른 여론재판은 삼가라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기점으로 발발한 ‘종북 척결’프레임이 또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이석기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통합진보당은 물론 민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칫 진보진영 전체의 탄압으로 번질기세다.
지상파 3사는 연일 메인 톱뉴스로 이석기 의원의 소식을 타전하고 있으며 종편채널 또한 24시간 생중계를 하듯 관련 뉴스를 보내고 있다. SNS에서는 죄의 유무를 떠나 이석기의 말 한마디로 ‘석기 시대’가 도래했다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석기 사태’ 하나로 온 매체가 도배가 된 상황이다. 이쯤이면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법도 하다.
하지만 사태의 진실은 가려진 채 여론에 의한 재판이 진행될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번과 같은 내란음모 사태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과거 독재 정권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혁당, 민청학련, 민족일보 사태 등 수많은 공안사건을 자행했다. 이 사건 모두 한 세대가 지나서야 무죄로 판결났지만 관련자들은 대부분 사형을 받았거나 오랜 기간 동안 구속수감을 했다. 국가공권력의 허위와 날조 그리고 고문으로 인한 증거인멸 등으로 진실은 왜곡되고 사법적 판단은 오판으로 이어져 개인의 삶이 무참히 짓밟혔던 것이다.
이번 ‘이석기 사태’와 매우 유사한 ‘김대중 내란 음모’ 또한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일으킨 주모자로 지목하고, 재야인사 20여 명과 함께 군사재판에 회부된 것을 말한다. 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23년 가까이 ‘죄인’으로 살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1980년에 유죄를 선고한 것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여 2004년 2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물론 이석기 의원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총기를 탈취하거나 유류시설을 파괴한다는 행동을 계획했다면 실정법에 맞게 처벌하는 것은 옳다. 다만, 우리 형법에에는 ‘피의사실 공표죄’, '무죄추정의 원칙'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의 녹취록과 수사상황 등을 언론에 흘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법과 원칙을 저버린다면 무고한 시민이 죄인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마녀사냥’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언론보도는 진실을 찾는데 더욱 어렵게 만든다. 지금까지의 언론보도를 보면 ‘~로 알려졌다’, ‘~로 보여진다’ 등 온갖 추측성 보도가 난무해있으며 반대편의 입장을 들어볼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석기 의원이 ‘진짜’ 내란음모를 범했다면 지금은 ‘비상사태’다. 언론은 이럴수록 평정심을 갖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보는 것이 우선순위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다. 과거 대부분의 내란음모죄가 무죄로 판결난 만큼 이번 사태 또한 지난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국민이 한국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섣부른 여론재판은 삼가야한다. 언론 또한 더욱 절제해야한다. 섣부른 여론 재판과 언론의 왜곡보도는 개인의 명예가 훼손될 뿐만 아니라 사회분열은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지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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