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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Archive (Stalker)

[장소] 대한민국 1호 음악 감상실 ‘녹향’

길을 걷다 보면 여러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뒤섞여 나의 고막을 때립니다.

또 지나치는 이들의 귓전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멜로디들이 흘러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쉽게 접하고 구할 수 있는 “음악”이지만, 컴퓨터도 MP3도 없었던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즐겼을까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세시봉 가요 음악 감상실처럼
흔히들 생각하는 TV드라마나 예능에서 영화에서 종종 보여주는 다방의 DJ를 쉽게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당시 청춘이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DJ가 적절한 멘트와 사연이 엮긴 노래의 레코드판을 찾아 틀어주었던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을 찾았겠지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 감상실의 시작이 바로 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바로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3번 출구에서 대구역 방향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녹향 음악 감상실이 있습니다.

녹향 음악 감상실은 1946년, 해방이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생긴 음악 감상실입니다.
 6.25를 겪으면서 피난민들로 가득했던 대구에서는 김희조 국악인, 김동진 작곡가와 같은 음악가뿐만 아니라
화가 이중섭, 시인 양명문, 시인 구상 과 같은 많은 문인들이 ‘죽치고 앉아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양명문 시인은
가곡으로도 유명한 ‘명태’라는 시를 이곳에서 지어 다시 떠나기 전에
녹향의 주인인 故이창수 옹에게 주었다는 것은 유명하고
비운의 화가 이중섭은 이곳에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명태>  - 양명문

감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벽장 가득 채워져 있는 수천장에 이르는 레코드판 중에는
만들어진 100년 된 것도 있고
피난 당시 유명한 예술가들이 들었던 그 멜로디를
 지금 들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녹향은
지난 2009년, 가게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녹향을 지키려는 대구 시민들과 많은 음악인들이 모여 시 낭송대회,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을 모았고
대구시의 지원을 이끌어 냈습니다.
모두들 녹향을 근대 유산중의 하나, 지켜야 할 것 들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고 쫓기는, 각자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혼자만의 위로를 하는 현대인들은
편하고 빠르긴 하지만 대화가 단절되고 지나치게 개인화 되어 안타깝던 차에,
가끔은 커피 한잔을 두고 오래된 바늘 끝이 레코드에 닿으면서
오랜 세월을 견뎌낸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면
 
이내 여유를 가지고 음악에 잠기고
생각에 빠지는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이곳 녹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 해 봅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 사이
평일 주말 상관없이 1인 5000원에
따뜻한 커피와 여유, 역사가 숨쉬는 음악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지난 65년간 '녹향'을 지키다 91세의 나이로 작고하신 故이창수 옹
사라질뻔한 대구의 역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lowr.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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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Utokpia_Dan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