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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이슈

[경제,사회] FTA 따라잡기...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은 국제무역질서와 통화질서의 수립과 변경에 일찍부터 참가했다. 미국과 유럽이 IMF와 WB의 총재직을 독점할 때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총재를 당연직으로 맡았다. 그러나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국제질서에 무관심 했거나 구조적으로 배제된 상태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했던 국제질서는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개최된 각종 무역협상 (Round)이었고, 자국의 입장을 방어하는데 주력했다. UN을 중심으로 1970년대 신국제경제질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논의가 일부 진행되긴 했지만 남미와 달리 동아시아는 착실한 경제성장을 해 왔다. 중심국에 의한 주변국 경제의 착취구조라는 종속이론은 동아시아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통해 일본에 이어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대만이 신흥공업국으로 성장했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의 경제수준도 꾸준히 상승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처리하면서 미국과 IMF는 많은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했다. 외환위기가 발발하기 이전 미국 정부는 역내 국가들로 하여금 과도하게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도록 압박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역내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절상하도록 유도했고, 자국의 금융산업을 위해 자본자유화를 주도했다(Gilpin & Gilpin, 2001;Wade, 2004). 1994년 멕시코 페소화 폭락을 통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했으면서도, 태국의 위기를 너무 안이하게 처리했다. 미국은 멕시코 위기 때와 달리 태국 정부의 직접 지원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된 IMF식 긴축프로그램을 강요했다. 일본 정부가 제안한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을 무력화 시켰고, IMF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의 실리를 우선 챙겼다. 글로벌 투기자본의 문제는 의도적으로 외면했고, 자본자유화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묵살했다(Bhagwati, 2000; Stiglitz, 2002). 미국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의 신뢰는 한 순간에 무너졌고 그 이후 반복된 통화위기를 통해 미국의 리더십은 더욱 훼손되어 갔다. 위기를 당한 국가는 물론 중국과 일본도 집단적 금융안보의 필요성을 느꼈고, 미국과 유럽 주도의 국제통화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되었다(김기석, 2005). 다음의 <표2>는 이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

<표> 경제 및 금융 주요 이슈

연도

주요 사건 및 이슈

1990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 동아시아그룹 (East Asia Economic Caucus) 제안

1992

▸유럽 지역 금융위기 발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영국 유럽통화체제에서 탈퇴

▸아세안 6개국 AFTA 협정 체결

1993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출범

▸미국 주도로 APEC 정상급 회담으로 격상

▸우루과이라운드 (UR) 최종타결

1994

▸APEC ‘보고르’ 합의 채택 (역내 무역 및 자본자유화 합의)

▸미국, Super 301 부활; 클린턴 행정부, 아시아 시장 개방위한 상황실 (war room) 설치

▸한국, 선진국경제협력기구 (OECD) 정회원 가입

▸멕시코 페소화 위기

1995

▸세계무역기구 (WTO) 출범; 다자간투자협상 (MAI) 시작

▸미국, 강한 달러 정책 (Strong Dollar Policy) 공식 선언

1997

▸69개국, 텔레커뮤니케이션서비스 합의

▸일본, 아시아통화기금 (AMF) 제안 (미국과 중국 반대로 무산)

▸태국 (9월), 인도네시아 (10월), 한국 (11월) 외환위기 발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세안+3’ 정상회담 개최 합의

1998

▸유럽중앙은행 (European Central Bank) 출범

▸러시아 루블화 폭락 (8월), 브라질 레알화 폭락 (11월)

▸말레이시아, 부분적 자본통제 실시; Moody's 말레이시아 신용등급 추가 하락

▸미국 재무부, 국제금융체제 강화 방안 연구 위해 G-22 재무장관 초청

▸미국, 글로벌 금융위기 방지 위한 G-33 재무장관회의 출범

▸미국의회, 국제금융기관자문위원회 (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 Advisory

Committee, IFIAC) 설립

▸일본, 미야자와 선언 (Miyazawa Initiative) 제안

1999

▸미국 대외관계위 (CFR) '국제금융체제의 미래' (The future of the international

financial architecture) 보고서 발표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회의 출범 (프랑스, 파리)

▸아세안+3 정상회담 최초 개최 (필리핀, 마닐라)

▸IMF, WB 금융부분평가프로그램 (Financial Section Assessment Program) 설립

▸G-7 금융안정화포럼 (Financial Stability Forum, FSF) 출범

2000

▸미국 의회, Meltzer Commission Report (국제통화체제 개편안) 발표

▸일본 주도, 치앙마이선언 출범 (300억불 규모의 통화스왑 합의)

2001

▸중국, 세계무역기구 (WTO) 정회원으로 가입

▸일본-싱가포르 FTA 협상 체결

▸아르헨티나 페소화 폭락 (외환위기 재발)

▸국제무역개발협의회 (UNCTAD), IMF중심의 금융체제 개혁 및 프로그램 수정 요구

2002

▸한․일투자협정체결 및 한․일 FTA ‘산․관․학’ 공동연구 시작

▸중국-아세안 포괄경제협력 구상에 합의

▸미국, Enterprise for ASEAN Initiative 선언 (싱가폴과 FTA 협상시작)

2003

▸WTO, 칸쿤 및 도하 협상 실패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에서 아시안채권시장선언 합의 (아시아채권펀드)

▸한-아세안 FTA 협상 개시

2004

▸중국-아세안 FTA 최종 합의 도달

▸한국 제안, 동아시아비전그룹 (EAVG) 출범

2005

▸아세안+3 (APT), 아시아벨라지오그룹 (ABG) 및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보고서 채택

▸일본-아세안 FTA 논의 시작

▸중국과 말레이시아 주도, 동아시아정상회담 (EAS) 개최

2006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통화단위 협의 공식 발표

▸한미 FTA 협상 공식발표

▸미국 부시 대통령,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 (FTAAP) 제안

▸제2차 EAS 개최 (필리핀, Metro Cebu)

- 동아시아에너지안보세부선언 (Cebu Declaration on East Asia Energy Security) 채택

- 일본이 제안한 동아시아 무역 및 포괄적경제협력관계 (Trade and the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in East Asia, CEPEA) 채택

2007

▸아세안+3 재무장관 회담에서 800억불 규모의 통화스왑 합의 도달 (교토)

▸일본-아세안 FTA 최종 합의 도달

▸한-아세안 FTA(상품, 서비스부문) 서명(11월)

▸한․미 FTA 협상 최종 타결

2008

▸미국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미국, G-20 정상회의 제안 (워싱턴)

2009

▸아세안+3, 1200억불 규모의 ‘치앙마이다자기금' (CMMI) 출범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 (미국, 피츠버그)

▸남미은행 (Bank of the South) 출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주도)

- 남미지역금융 (Ratin America Monetary Fund, RMF) 구상도 발표

2010

▸G-20 정상회의 (서울)

동아시아 국가들은 우선 아시아태평양협력기구(APEC)를 대신할 새로운 기구로 1997년 12월 아세안+3(APT)을 출범시켰다. 1998년에는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동기금의 마련과 역내 국가들 간의 통화스왑에 관한 미야자와 선언(Miyazawa Initiative)을 수용했다. 뒤이어 2000년에는 통화스왑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한 치앙마이선언 (Chiang Mai Initiative)에 합의했고, 2003년에는 아시아채권시장이 공식 출범했다. 집단적으로 금융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2005년 아시안 벨라지오 그룹과 2006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주도의 아시아 단일 통화 논의로 이어졌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또 멕시코 칸쿤과 도하 카다르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함에 따라 역내 자유무역협정에도 적극 나섰다. 2002년 중국과 아세안은 포괄적 경제협력 구상에 합의했고, 한국과 일본도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2004년 자유무역협정에 최종적으로 합의했고, 2007년에는 일본과 아세안도 동일한 합의에 도달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미국의 전략은 경제와 금융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1998년 러시아와 브라질로 외환위기가 파급된 직후부터 미국은 국제통화체제의 개편을 주도했다. 한편으로 미국 재무부는 외환위기에 처한 개도국을 중심으로 G-22 재무장관 회담을 주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입장이 반영되는 국제통화체제 개편안 마련에 착수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대외관계위 (CFR)는 1999년 '국제금융체제의 미래' (The Future of the International Financial Architecture) 보고서를 발표했고, 미국 의회 역시 2000년 이와 관련된 멜츠보고서 (Meltzer Commission Report)를 제출했다. 또한 미국은 지역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or Asia Pacific)을 제안했고, IMF로부터 독립된 아시아통화기금의 설립을 반대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인 G-20 역시 미국의 이러한 대외정책과 맞닿아 있다.

일찍이 미국은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가 제안한 동아시아경제협력기구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를 정상회담으로 승격시킨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영향권에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포함된 APEC과 G7은 아시아 위기 동안 아무런 역할도 못했고, 아세안+3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과 같은 집단적 금융안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과 국제통화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1999년 설립된 G-20을 정상급 회담으로 승격시키고, 금융안전망 구축, IMF 지분개혁, 보호주의 방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자본자유화를 늦추고 개별 국가의 금융보호주의를 인정하는 문제, 미국과 유럽이 독점하는 IMF와 WB의 총재직에 대한 문제, 자본자유화에 대한 속도조절, 국제신용평가회사 및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 등에 있어 일부 동아시아 국가와 미국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Utokpia_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