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지난 198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 1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되었습니다.
예산에는 ‘2005년까지 무조건 우주 발사용 장거리 로켓을 만들라’는 긴급 지시가 붙어있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항우연은 2010년 우주 발사체(로켓) 개발을 목표로 고체연료를 쓰는 소형 과학로켓을 개발 중이었습니다.
정부의 지시는 이를 5년이나 앞당기라는 것이었고,
더구나 장거리 로켓은 액체연료 엔진을 써야 하는데 당시 항우연을 포함해 국내에서는 이 기술을 연구하는 곳 없었습니다.
ⓒ 조선일보
☞액체로켓·고체로켓
항우연은 일단 2001년까지 지상 200㎞까지 올라가는 기본형 액체로켓(KSR3호)을 만든 뒤 이를 개량해
2005년쯤 무게 50㎏급의 저궤도 위성을 실어 쏘아 올린다는 전략을 세웠고,
이때까지만 해도 항우연과 과학기술부는 로켓 기술을 독자 개발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2001년 3월 한국이 국제조약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에 가입하면서 이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MTCR은 군사 목적으로 로켓 기술을 사고파는 것은 통제하지만 평화적 목적의 거래는 인정한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로켓 선진국에서 기술 도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죠.
대통령까지 나서 '2005년 로켓 발사'를 선언한 마당이라 청와대와 과학기술부는 어떻게든 '지름길'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채연석 당시 항우연 선임연구부장은
"2005년 발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외국에서라도 빨리 기술을 들여오라는 상부의 재촉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정치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죠.
항우연과 과기부는 액체 로켓 엔진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일본·프랑스·러시아를 급히 접촉했고,
이 가운데 한국에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나라는 러시아가 유일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외환 위기로 재정난이 극심했던 상황입니다.
현금이 급한 러시아와 2005년 발사 일정이 촉박한 우리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이죠.
과기부는 2001년 5월 러시아와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협상을 시작했으나 협상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갈 길 바쁜 우리 정부의 사정을 알아챈 러시아는 거액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다가
2003년 9월에야 자국 우주 기업 흐루니체프를 공식 협력기관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항우연은 2004년 3월 당시 오명 과학기술부장관에게 "2005년 발사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했고,
협력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에 로켓 발사는 2007년으로 미뤄졌습니다.
게다가 당초 기술 이전을 약속했던 러시아가 말을 뒤집어
우주발사체의 핵심인 1단 로켓의 엔진을 포함한 핵심 기술은 전해줄 수 없다고 돌변했습니다.
로켓을 공동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정치권은 "한국에 대한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며 양국 간 기술 보호협정까지 요구했고, 2007년에 협정이 비준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우주발사체 개발을 착수도 못 해보고 러시아에 5년을 끌려 다녔다.
우리 과학자들은 러시아에서 만들어 온 로켓이 왜 실패 했는지 뜯어보기는 커녕 만져볼수 조차 없어 화가 났을것이 분명합니다.
이후 다급해진 항우연은 그사이 러시아를 대신해 1단 발사체 엔진 기술을 제공할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섰고,
우크라이나에서 30t급 로켓 엔진 기술을 배워왔지만 국내에는 그 성능을 테스트할 연소시험장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결국 이 엔진은 개발되지 못하고 묻혀버렸습니다.
러시아는 2009년에야 자신들이 실제 시험 발사도 해보지 않은 1단 로켓을 한국에 제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나로호는 두 차례 모두 발사에 실패한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로켓개발 주역인 고다이 도쿄대 항공우주회 회장은 “나로호는 한국돈으로 러시아 로켓 개발 시험 하는 꼴”이라며 꼬집었습니다.
과거 일본의 로켓 개발 성공에 힘이 되었던 미국과 일본 간의 기술 협력 관계와 지금의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의견입니다.
현재의 한국 기술력으로는 로켓 발사는 무리라는 말과 함께
“지금 한국이 로켓을 국가의 제 1 과제라고 생각합니까?” 라며
“ 중국이 1970년 당시 창정로켓을 발사하기 전에 무슨 돈이 있고, 무슨 기술이 있었습니까?
국가의 의지, 과학자의 집념만으로 시작 했습니다.
북한은 국민의 생활을 희생하면서 모든 것을 그쪽에 걸고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패전이후 7년 동안 항공 산업이 금지되었고 세계 항공 산업은 ‘제트엔진’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발전했습니다.
비행기로는 안 되니 로켓으로 따라잡자는 분위기와 의지가 강했습니다.
실패, 실패, 실패, 성공, 다시 실패, 실패의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우주공학)는 "우주발사체는 국가 안보 기술인데 어느 나라가 쉽게 넘겨주겠느냐"며
"차라리 그때 러시아와 계약을 끊고 독자 개발에 나섰다면 지금쯤 로켓 기술이 훨씬 진전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1단 로켓 엔진을 시험하기 위한 종합연소시험장조차 없는 상태에다
‘최초의 우주인’ 이라며 나랏돈으로 우주관광을 하고 온 이를 홍보하기에 바쁩니다.
기술을 배우려다 중도 탈락한 이에게는 나랏돈을 허비한 채 나라망신 시킨 배반의 허물을 뒤집어 씌운 채로...
반면에 나로호 개발 책임자인 조광래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은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배운 게 전혀 없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며
"독자개발로 갔다면 우리의 로켓 기술이 지금과 같은 수준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국가가 보유한 소프트파워의 종합 능력을 반영한다는 우주개발이라는 분야에서
과학기술적 문제보다 정치적, 외교적 무능함을 보여주는 한국의 로켓개발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자료출처] 로켓 기술 준다던 러시아, 돌연 태도 돌변해선… 한국 15년 허송세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4/2012052400238.html?news_Hea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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