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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60. 02. 28 - 2.28민주운동 2.28학생민주 의거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횡포와 부패, 실정이 절정을 이루고 국민들의 생활이 "못살겠다 갈아보자" 고 할 만큼 빈곤과 불법적 인권유린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난 민주적 저항운동이였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했고 60년 3.15일 정부통령 선거를 맞아 부패, 불의로 민심이 이반했음을 알고도 부정선거로 집권을 연장할 것을 기도했다. 그에 따라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가운데 언론과 야당의 탄압은 말할 것도 없고 막거리와 고무신으로 매표공작을 벌였는가 하면 심지어 여당 후보의 정치집회 때는 대중을 강제 동원하면서 야당 후보의 연설회 때는 청중이 모이는 것을 방해했다. 투표장과 개표장에선 사전투표,대리투표,피아노표 등 부정투개표로 민의를 조작했다. 이같은 자유당의 장기 .. 더보기
2006. 02. 27 - 비정규직법안 통과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논란을 겪어온 비정규직법안이 27일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서 전격 통과됐다. 환노위는 이날 밤 전체회의를 열어 기간제 및 파견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각각 2년으로 하고 기간제 고용기간 만료 후 고용 의제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처리, 법사위로 넘겼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법은 지난 2004년 11월 발의된 뒤 여야간 대립으로 장기간 표류 끝에 15개월만에 통과됐다. 이날 전체회의는 오후에 긴급 소집됐으며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법안 처리 반대로 헌정 사상 전체회의로는 두번째로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상태에서 진행됐다. 이날 처리된 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제 근로자 보호법 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법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으로, 이 가운데 .. 더보기
1899. 02. 25 - 로이터 통신 창립자 로이터 사망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844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로이터라는 이름을 얻었다. 독일 괴팅겐에서 삼촌이 경영하는 은행의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뛰어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를 알게 되었다. 가우스는 그당시 전신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장차 뉴스보급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게 되었다. 1840년대초 로이터는 베를린의 작은 출판사에 들어갔다. 정치적 소책자를 많이 출판하여 당국의 미움을 사게 되자 유럽 전역에 혁명의 파도가 몰아치던 1848년에 파리로 이주했다. 그는 논설기사와 상업적 뉴스 등을 발췌·번역하여 독일의 신문들에 보내기 시작했다. 1850년에 독일 전신선의 종점인 아헨과 프랑스-벨기에 전신선의 종점인 브뤼셀을 잇는 전서구(傳書鳩) 통신사업에 착수했다. 185.. 더보기
1955. 02. 24 - 스티브잡스 출생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 미국의 기업인으로, 애플의 창립자다. (이미지 - 자그니 블로그 news.egloos.com)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이미지 - linxus.co.kr) 1985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더보기
1904. 02. 23 - 한일의정서 체결 한일의정서 또는 조일 공수동맹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중립을 주장하는 한국을 세력권에 넣기 위해 1904년 1월 대한제국 황성을 공격하여 황궁을 점령한 뒤 같은 해 2월 23일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 일본이 한국을 협박하여 이지용과 하야시 곤스케 명의로 공수동맹을 전제로 6개의 조항으로 한일의정서가 만들어졌다. 조약전문 제1조 한·일 양제국은 항구불역(恒久不易)할 친교를 보지(保持)하고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대한제국정부는 대일본제국정부를 확신하고 시정(施政)의 개선에 관하여 그 충고를 들을 것. 제2조 대일본제국정부는 대한제국의 황실을 확실한 친의(親誼)로써 안전·강녕(康寧)하게 할 것. 제3조 대일본제국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확실히 보증할 것. 제4조 제3국의 침해나 .. 더보기
1886. 02. 22 -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 등장 1886년 2월 22일 -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 등장  지금의 신문광고는 화려하면서도 컬러풀하고 무엇을 광고하는지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대부분 이미지를 이용한 광고를 많이 쓰는 특성을 띄고있는데, 최초의 한국 신문 광고는 어떠하였을까? 최초의 광고는 24줄 짜리 순수 한문광고였으며, 광고주 세창양행은 본사가 함부르크에 있는 독일 무역회사이다. 광고 내용을 보자면 세창양행이 취급하는 물품들을 나열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사고자 하는 물품은 호랑이 가죽을 비롯하여 수달피·검은 담비·흰 담비· 소·말·여우·개 등의 가죽과 사람의 머리카락, 소·말·돼지의 갈기털·꼬리·뿔·발톱, 조개와 소라, 담배, 종이, 오배자, 옛날 동전 등이다. 팔려는 물품은 자명종, 호박, 유리, 서양등, 서양 단추, 각색 서양 직.. 더보기
1986. 02. 20 - 러시아 유인우주장 미르호 발사 미르호는 러시아에서 만든 우주정거장으로 폭 33m,길이 30m, 높이 27m의 크기에 무게는 140톤입니다. 미르호는 우주에 관한 과학 자료를 전달해주는 수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미르호는 원래 우주에서 3년만 쓰고 폐기할 예정이었으나 15년동안 사용하였고 그 동안 고장은 약 1500번이나 났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유지비가 천문학적으로 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폐기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르호는 지구로부터 350~400km 상공에서 지구 둘레를 하루에 16번씩 회전했습니다. 2001년 3월 그 동안 많은 우주과학자료를 제공해주었던 미르호가 폐기되는 모습입니다.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1971년 4월 발사된 구소련 무인 우주정거장인 살류트이며 우주선 소유즈 11호를 타고 3명의 우주인들이 2.. 더보기
1848. 02. 21 - 잔다르크의 교회 재판 시작되다 잔 다르크 (Jeanne d'Arc, 1412년 1월 6일 ~ 1431년 5월 30일) 1337년부터 프랑스와 영국이 프랑스 왕위계승권분쟁으로 시작한 전쟁은 1453년까지 116년 동안 계속되었다. 후일 '백년전쟁' 으로 불리는 이 전쟁의 중심에 한 소녀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에 밀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동 레미에 살던 농민의 딸 잔 다르크는 어느날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된다. "샤를 왕세자를 도와 프랑스에 침범한 잉글랜드군과 그들의 동맹 부르고뉴를 몰아내고 프랑스를 구하라" 잔 다르크는 자신이 들은 바를 실천하기 위해 왕세자를 찾아간다. 한편, 당시 프랑스를 이끌고 있던 샤를 왕세자는 절망적인 전세앞에 좌절하여 시농성에 도피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역대 국왕들의 즉위식이 치러지던 랭스지.. 더보기
1907. 02. 17 -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國債報償運動] 시작일 국채보상운동이란 1907년(융희 1) 2월에 대구에서 시작된 국권회복운동으로 전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1,300만 원)를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운동을 말한다. 1907년 2월 서상돈·김광제·박해령 등 16명이 대구에서 조직한 국채보상기성회는 곧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서 이에 호응했다. 일본까지 파급되어 800여 명의 유학생들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이 실시된 이후 4월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은 4만여 명이고, 5월말까지 230만 원 이상이 거두어졌다. 이에 대해 일제는 송병준 등 친일파가 지휘하던 매국단체 일진회를 이용하여 방해하고, 통감부에서 국채보상회의 간사인 양기탁을 보상금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더보기
1945. 02. 16 - 젊은 시인 윤동주 사망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 윤동주 시인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15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처녀작은 , 입니다. 삶과 죽음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본 이들은 자기만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으켜 주지 아니 하였다. 하늘 복판에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