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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2002. 9. 26 - 개구리소년 유골 발굴 1991년 3월 26일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마을 뒷산인 와룡산으로 놀러 나간 대구 성서국교 어린이 5명이 실종됐다. 이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으로 불리며 미궁에 빠졌지만 실종됐던 소년 5명의 유골과 신발 등 유류품이 실종 11년 만인 2002년 9월 26일 오전11시 30분쯤 발견돼 사건은 전환점을 맞게됐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와룡산 서남쪽 계곡으로부터 2.5km 지점으로 이들이 살았던 달서구 이곡동 집과 다녔던 성서초등학교로부터는 3.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은 당초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소년들이 저체온(低體溫)으로 자연사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추가 발굴 과정에서 총탄과 소매가 매듭 지어진 옷가지 등이 발견되고 유골의 두개골에서 함몰 흔적과 구멍 등이 발견됨에 따라 타살 가능성에도 비.. 더보기
1531.09.25 발보아, 태평양발견 1513.09.25-발보아, 태평양 발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스페인은 그곳에 식민지 에스파뇰라(현재의 산 도밍고 혹은 아이티)를 세웠다. 부랑자들이 금을 좇아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금은 없었다. 에스파뇰라 총독은 땀흘려 농사를 지을 리 없는 그들을 모아 카리브해 건너 남미 대륙으로 파견할 탐험대를 조직했다. 스페인에서부터 황금을 좇아온 30대 중반의 건달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도 일원이었다. 탐험대는 파나마해협의 다리엔에 남미대륙 최초의 신도시를 건설했다. 다리엔의 총독이 된 발보아에게 인디언의 한 추장이 큰 바다와 그곳으로 흐르는 금이 많은 강물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1513년 9월 1일 발보아는 미지의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글과 늪지가 가로막고, 적도의 태양이 괴롭혔지만 발보아.. 더보기
1982.09.24 - 82서울 국제무역박람회 개막 1982.09.24 - 82서울 국제무역박람회 개막 해방이후 최대의 국제무역박람회가 1982년 9월 24일부터 10월 18일까지 25일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과 인근총무처 부지에 가설된 전시장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공식명칭은 '82서울국제무역박람회(SITRA)'이다 1981년 4월 정부의 박람회 개최 결정 이후 1년 6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개최 된 이 박람회에는 676개 국내업체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캐나다, 나이지리아 등 해외 40개국으로부터 262개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박람회 개최기간 중 국내에서 220여만명의 관람객과 해외 97개국에서 1만여명의 바이어들이 방한, 박람회를 관람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더보기
1986.09.20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개막 27개국 4,800여 명의 아시아 선수들이 ‘영원한 전진(Ever onward)’이라는 표어 아래 25개 종목에 걸쳐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16일간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1979년 서울대회 유치 희망을 공식 발표한 뒤 1981년 아시아경기연맹 총회에서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이 대회의 운영기술 및 경험 축적은 2년 뒤에 열린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회에는 모두 33개 경기장과 54개 연습장이 이용되었다. 경기장은 기존시설 20개를 보수·활용하는 외에, 1984년에 올림픽주경기장과 수원실내체육관을 완공했다. 서울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지은 선수촌은 5,000명 수용규모의 아파트 18개동과 대형식당·국제센터·종교관·병원·행정센터·본부건물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메인프레스센터.. 더보기
1946.09.20-제1회 칸영화제 개막 제1회 칸영화제 개막 (칸영화제 개최전당 세계 4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칸 영화제가 개최되는 곳이다. 정식 이름은 팔레 데 페스티발 에 데 콩그레(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es)이며 크루아제트 산책로의 끝에 위치한다 )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Cannes)에서 매년 5월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이다. 1932년 베네치아영화제가 개최되자 프랑스 정부에서는 1939년 9월 1일 제1회 개최를 목표로 칸영화제를 기획하였으나 히틀러의 폴란드 최후통첩으로 인하여 영화제는 연기되었고, 1946년 9월 20일 임시정부의 승인 아래 18개국의 영화를 모아 영화제를 개최하였다. 그후 1948년부터 1950년까지를 제외하고는 매.. 더보기
1994.09.19 지존파 사건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994년 9월 19일 `살인공장`까지 차려놓고 살인을 밥먹듯이 저지른 이른바 `지존파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이 거처하며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일삼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아지트 지하실은 끔직한 `인간 도살장` 이었다. 잔인한 고문과 살인행위가 벌어졌던 감금시설과 시체를 태우는 소각장까지 모두 갖춘 지하실현장에는 유골 2구가 소각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시체를 태울 때 뿜어나온 가스가 그대로 남은 듯 매캐한 냄새가 났다. 상상조차하기 힘든 온갖 범행 수법과 잔인함 그리고 완전범죄를 노린 치밀한 사전 준비. 7인조 ‘지존파’가 저지른 연쇄납치ㆍ 살해ㆍ 시체유기 사건은 지금까지 있었던 강력범죄의 수법을 총망라한 집합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끔찍한 것이어서 세상을 소스라치게.. 더보기
1899.09.18 - 철도 경인선 개통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됐습니다. 올해로 113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개통당시 철로 길이는 노량진-제물포 간을 잇는 33.2㎞였습니다. 1897년 3월 22일에 미국의 철도회사와 합작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미국은 자금난으로 철수하고, 일본인의 손을 거쳐 1899년 9월 18일 구 제물포역-노량진역간 33킬로미터 구간이 개통되었습니다. 개통당시의 경인철도는 탱크처럼 생긴 미제 ‘모갈’형으로 증기기관차 4대, 객차 6량, 화차 28량 이었고 1일 2왕복 주행시간 1시간 30분이었다. 경인철도를 처음 주행한 기관차는 미국 브룩스사의 탱크기관차. 기차가 내뿜는 불똥으로 철로변 민가에는 화재가 빈발했다고 한다. 조정은 처음 민족자본에 의한 자발적인 철도건설을 시도했으나 자금난 .. 더보기
1940. 9. 17 - 한국 광복군 창설 출처 : http://cafe.naver.com/bohunstar/18492 1940년 9월 17일에 중화민국의 임시수도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 공식명칭은 한국광복군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에 ‘군사조직법’을 제정하였고, 1931년에는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ㆍ난징군관학교(南京軍官學校) 등 중국군 사관학교에 우리나라 청년들을 입교시켜 군사인재의 양성에 힘썼다. 1937년에는 광복군 창설계획을 세웠으나, 중일전쟁의 발발로 지연되어 1940년에 비로소 광복군총사령부의 창설을 보게 되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는 광복군선언문을 발표하여 “광복군은 한ㆍ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그 취.. 더보기
1950.9.15 -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1950.9.15 -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남한에서 거의 포위 당한 유엔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을 시도하며 맹공격을 가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한국군의 해병대원들이 인천 해안에 상륙한 반면 미군은 약간 떨어진 월미도에 상륙했다. 이번 작전은 맥아더 사령관의 큰 모험이었다. 이날 오전 6시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이틀동안 비행기 및 순양함과 구축함은 여러 곳의 적진지를 포격했다. 19일에는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했고 20일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26일 정오에는 중앙청에 한국 .. 더보기
1955.09.14 대구매일신문 최석채 주필의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괴청년 40여명 신문사에 난입 ▶IPI가 뽑은 `언론자유영웅 50인`에 선정됐던 몽향 최석채선생 1955.09.14 대구매일신문 최석채 주필의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괴청년 40여명 신문사에 난입. 대구매일신문에 괴청년 40여명이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1955년 9월 13일 대구매일신문 주필인 최석채씨가 쓴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때문이었다. 이 사설은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인 임병직 대사가 대구를 방문할 때 당국이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환영한 처사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설이 나간 다음날인 9월14일 국민회 경북도지부 총무차장 김민과 자유당 경북도 검찰부장 홍영섭은 괴청년 40여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파괴하고 발송중인 신문 뭉치를 탈취해갔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