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독립운동가'라고 했을때 누구를 떠올리 시나요 ?
그렇습니다. 오늘은 윤봉길의사 의거 8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0년에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라는 글귀를 남기고 윤봉길 의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조국독립을 위해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1932년 4월 29일 - 윤봉길 의사 도시락 폭탄 사건
사건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고
협의 끝에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게 되는데요. 그 당시에 윤봉길의사의 나이는 25세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창 학교를 다니고 있을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할텐데 그 나이에 몸을 바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 결과로 다수의 일본 대장과 해군중장 그리고 총영상들이 사망하고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결국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가혹한 고문 끝에 그해 1932년에 사형선고를 받게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윤봉길 의사는 대한남아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국민당 총통 이었던 장제스는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이 폭탄 투척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며 감탄하였고,
이는 그 동안 장제스가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고 합니다.
@이미지출처_구글
▲ 1932년 12월 19일 24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땅에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이다. 이마의 검은 점은 총알의 흔적이다.
- 강보에 싸인 두 병정(兵丁)에게 -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어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윤봉길 의사는 거사에 앞서 고향에 두고 온 어린 두 아들에게 편지 한장을 남겼습니다.
윤의사는 큰일 즉 '장부출가 생불환'이라는 말을 끝내 지켰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윤의사가 지키고자 하였던 장부다운 삶을 몸소 보여주네요.
@이미지출처_구글
<<윤봉길 의사 공적>>
윤봉길 의사(1908. 6.21~1932.12.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사설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 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피체된 윤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해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하였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6월 30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하지만, 알고 계시나요 ?
실제로는 도시락 폭탄을 던진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가 투척한것은 바로 도시락폭탄과 같이 가지고 간 물통폭탄이라고 합니다.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이 었는데 사용하지 못하시고 바로 잡히셨다고 하네요 .
우리나라를 위해 큰업적을 이루신 분인데 우리는 정작 잘못된 내용을 배우고 그것을 머릿속에 남겨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배워야할 것은 쉽게 여겨지고 있고, 어째서 ABC와 같은 알파벳만 중요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우리나라사람 뿐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 역사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때 전문가와 같은 대답은 할 수
없을지라도 누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뭘 하는 날인지는 정확하게 알고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적어도 이런 날만큼은 우리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윤의사의 애국심을 기념하며 우표와 옆서를 만들어 왔습니다.
올해도 윤의사 상해의거 기념식을 한다고 합니다. 참여하셔서 뜻깊은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요 ?
또한 윤의사를 위한 홈페이지가 있으니 들어가서 찬찬히 살펴보는것도 좋을 것 같네요.
@ Utokpia_VIV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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