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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1944.7.31- 어린왕자의 작가 생택줴페리 사망

 

1942년 초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생텍쥐페리는 흰 냅킨에 장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식당 종업원이 옆에서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함께 식사하던 출판업자 커티스 히치콕이 생텍쥐페리에게 뭘 그리는 것인지 물었다. 생텍쥐페리가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한 어린 녀석이지요.”  

히치콕이 그림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어린 녀석 말입니다. 이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떨까요. 어린이용 이야기로 말이지요. 올해 성탄절 전에 책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며칠 뒤 생텍쥐페리는 친구 레옹 윈체슬라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보고 어린이 책을 써보라는 데, 날 문방구에 좀 데려다 주시오. 색연필을 사야 하니 말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착상을 색연필로 그려보았지만 신통치 못하다고 생각했고, <전시 조종사>의 삽화를 그린 베르나르 라모트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라모트의 데생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생텍쥐페리는 점점 더 이 일에 몰두했다.

1942년 여름 생텍쥐페리 부부는 뉴욕에서 기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롱아일랜드 노스포트 근처 이튼 네크에서 식민지풍의 하얀 삼층집을 세내어 살았다. 이 집이 <어린 왕자>의 사실상의 산실이 되었다. 그리고 1943년 4월 6일 레이널앤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영어와 불어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 출간 직후 생텍쥐페리는 지난날 동지들이 있는 2/33 비행중대에 합류하기 위해 뉴욕을 떠나 3주간의 여정 끝에 1943년 5월 4일 알제에 도착했다. 당시 알제의 드골 임시정부는 생텍쥐페리를 공공연히 비겁자로 비방하며 <전시 조종사>의 판매를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왜 내가 전투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순정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단 말인가.” 당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텍쥐페리가 한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1943년 7월 21일 생텍쥐페리는 튀니스에 주둔하고 있던 자신의 옛 비행중대에 복귀했다. 그러나 조종사 연령제한이 30세 전후인 라이트닝 비행기를 타기에는 그의 나이가 많았다. 결국 관측과 기관총 보조사수 역할을 제외한 비행기 조종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1944년 4월 단 5회의 정찰비행만 한다는 조건으로 비행중대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4년 7월 31일. 지중해의 한 여름은 그날도 맑고 짙푸르고 뜨거웠다. 아침 8시 45분 생텍쥐페리는 그르노블-안시 정찰 임부를 띠고 이륙했다. 론 강 골짜기를 따라 정찰을 한 뒤 코르시카 기지로 돌아오는 고독한 정찰 비행이 시작된 것이다.

예정된 기지 귀환 시각은 오후 1시 30분 무렵. 그러나 생텍쥐페리가 모는 정찰기는 기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 전투기들의 관측과 공격에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맑은 날씨. 생텍쥐페리의 정찰기는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니스 서쪽 상공에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다 쪽으로 선회하여 해안선 저 너머로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 그의 비행기는 안전 고도인 6천 미터보다 낮게 그리고 예정된 항로를 벗어나 비행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 곳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들어서자 정상적인 귀환 항로에서 서쪽으로 벗어났던 것 같다. 바스티야 북쪽 100킬로미터 지점 코르시카 상공에서 적기에 피격되어 바다로 추락. 이것이 44살 생텍쥐페리의 마지막이었다.

출처-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