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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898.9.5-<황성신문> 창간되다. 황성신문 창간호(1898년) 1898년 9월 5일 사장 남궁 억, 총무원 나수연 등이 국민지식의 계발과 외세침입에 대한 항쟁의 기치 아래 지금의 서울 광화문에서 창간하였다. 남궁 억은 ≪대한황성신문≫의 판권을 물려받아 오늘날의 합자회사와 같은 고금제(股金制)를 신문사상 최초로 채택해서 운영하였다. 문자는 국한문 혼용이라고 하나 거의 한자에 한글로 토를 단 정도의 한문위주의 문장으로 제작되어 ≪독립신문≫ 이후 여러 신문들이 순한글로 제작되던 전통을 깨뜨려 한학 식자층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1904년 6월 17일 일본인이 한국에서의 황무지개척권을 주한 일본공사를 통하여 한국정부에 요구해오자, 이 신문은 그 부당성을 여러 차례 사설로써 보도하여 그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구국민중대회의 모임인 .. 더보기
1945.09.02 일본항복문서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을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항복'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뜻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은 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전황은'무조건항복'을 결정했다. 일부 장교단이 항복을 거부하며 쿠데타를 계획했지만 대세를 거스를수는 없었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에 울려 펴졌다. 패전과 항복의 조곡이 었다.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이 남았지만 아무도 이 .. 더보기
1952.08.29 -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초연 2008년에 MBC가 방송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신임 시장이 강마에에게 취임 축하 공연을 강요하자 강마에께서 제대로 어퍼컷을 날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은 조용히 악보만 바라보고 있고, 전임자가 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미워하는 신임 시장은 "저게 뭐야"라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곡이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입니다. 1952년 8월 29일, 처음으로 뉴욕 주 우드스탁에서 데이빗 튜더(David Tudor)가 초연했습니다. 데이빗 튜더는 피아노 건반 뚜껑을 열었다가 몇 분 후 닫기를 2번 반복한 것으로 연주(?)를 마쳤습니다. 《4분 33초》는 악보가 없이 I. TACET, II. TACET, III. TACET라고 쓰여 있고, 각.. 더보기
1789. 08. 26 - 프랑스 인권선언 발표 1789년 8월 26일 프랑스는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인권선언문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정식명칭은 '인권 및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고 하는데 전문과 함께 17조로 구성된 본문이 함께 한다. 이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유럽지역에서 형성된 민주주의 사상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인권선언문을 통해서 프랑스 헌법제정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후로도 다른 나라들의 법 제정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한 조항을 짚어보자면 제6조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므로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대한 차별 이외에는 평등하게 공적인 위계, 직무 등에 취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내용이 담긴 프랑스 인권선언은.. 더보기
[시] 바람 - by. 정연복 바람 정연복 바람은 꽃잎 위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잎들에게 찰나의 입맞춤을 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히 사라질 뿐 바람은 꽃잎에 연연(戀戀)하지 않는다. 꽃잎처럼 여리고 착한 영혼들에게 모양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한줄기 따스함으로 닿았다가 총총히 떠나간 그분의 삶이 바람이었듯 나의 남은 생애도 바람이기를! 더보기
[사회] 밑는 도끼에 발등찍힌다. 소개팅도 조심하자 '밑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A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 C씨로 부터 소개팅을 받았고, 첫 만남을 가졌지만 소개팅한 여성 B양이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여 하룻밤 같이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일 뒤 C씨는 A씨에게 소개팅한 B양을 성폭행 하지 않았냐고,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죄가 얼마나 큰지 아냐고 하며 협박을 돕기 위해온 D씨와 C씨에게 협박을 당하고, 이들이 미리 알선해놓은 대부업체에 대출을 하여 1200만원을 이들에게 갈취당했습니다. 이 범행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당한 만큼 그 충격이 너무 커 A씨는 어디에 하소연 하지도 못하고,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실에서 미성년자인 여고생들을 꼬드겨, 미성년자들의 몸을 빌미로 .. 더보기
[명언] 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더 큰 시간 낭비이다. - by. 메이슨 쿨리 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더 큰 시간 낭비이다. ( Regret for wasted time is more wasted time. ) by. 메이슨 쿨리 더보기
1900.08.25 독일철학자 니체의 사망 독일의 철학자. 생(生)철학의 대표자로 실존주의의 선구자, 또 파시즘의 사상적 선구자로 말해지기도 한다. 본 대학을 거쳐 스위스의 바젤 대학 교수직(1869~1879)을 그만두면서부터 고독한 생활을 하다가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는 종래의 합리적 철학, 기독교 윤리 등 모든 종래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철저한 니힐리즘(nihilism)을 주장하여 생(生)의 영겁회귀(永劫回歸) 속에서 모든 생의 무가치를 주장하고, 선악의 피안에 서서 '약자의 도덕'에 대하여 '강자의 도덕'을 가지고 '초인'(超人)에 의해서 현실의 생을 긍정하고 살아야 함을 주장했다. 이 사상 속에는 생물진화론의 생존투쟁의 사고가 존재하고 있음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진행해 가는 19세.. 더보기
1618.8.24-허균 세상을 떠나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 검열·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냈다.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었다가 서울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춘추관기주관·형조정랑을 지내고 1602년 사예 ·사복시정을 거쳐 전적·수안군수를 역임하였다. 1606년 원접사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로 명나라 에 가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도가 되었고, 천주교 12단을 얻어왔다. 같은 해 시관이 되었으나 친척을 참방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후 태인으로 물러났다. 당대 권신이었던 이이첨과 결탁하여 폐모론을 주장하였으며 예조참의·호조참의·승문원부제조를 지 냈다. 1617년 폐모론을 .. 더보기
1939.8.23 - 독일·소련 불가침조약 조인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와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외상 몰로토프간의 5시간 회담끝에 1939년 8월 23일 오전 10시 기한 10년의 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됐다. 양국은 또 폴란드 분할에도 합의했다. 히틀러는 이미 베르사유체제를 파기하고 대독일 회복에 나서 상당히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점령지역과 독일을 잇는 단치히 지역이 아직 미수복지로 남아있어 이해 3월 히틀러는 폴란드에 단치히 지역 양도를 요구했다. 영국 챔벌렌인 수상은 폴란드에 원조를 약속했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대비해 모스크바에서 프랑스, 소련과 함께 3국 군사동맹 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회담은 결렬되었고, 이에 소련은 독일과의 관계회복에 나섰다. 8월 16일 몰로토프 외상은 1.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2. 독일이 일소관계 개선에 노력 3. 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