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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오늘의 역사

2001.09.11 뉴욕세계무역의센터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3천여 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다. 9/11이라고 부르는 이 날의 악몽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무슬림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번 테러로 3천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9월 11일 아침, 4개조로 나뉜 테러리스트들은 동부 각 도시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4대의 비행기를 납치했다. 각 조마다 훈련된 비행기 조종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중 뉴욕에서 출발한 비행기 두 대는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타워에 충돌했다. 아메리칸 항공 보잉 여객기가 동부표준시 오전 8시 46분에 북쪽 타워를 들이받았고, 유나이티드 항공 보잉 여객기는 9시 03분에 남쪽 타워에 부딪혔다. 빌딩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 중.. 더보기
1796.09.10 -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화성(현재의 수원) 완공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화성(현재의 수원) 완공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화성(현재의 수원)이 2년 반 동안의 공사끝에 1796년(정조 20년) 9월 10일 완공됐다.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백미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당대의 모든 과학 기술과 역량이 동원된 이 성은 다산 정약용이 기중기를 이용해 축성의 모든 과정을 계획하고 감독했다. 성의 총길이는 4600보(5743m)로 서양식 축성법을 채용했고, 재료도 대형벽돌을 사용했다.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이유에 대해 벽파세력의 압박을 피해 화성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화성 천도설’이 있긴 하지만, 당쟁에 휘말려 비운에 간 아버지 세도세자를 추모하고 국왕으로 추존하려는 자신의 비원을 실현할 목적으로 건설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정조는 화성.. 더보기
1976.09.09 - 마오쩌둥의 죽음 마오쩌둥[ Mao Zedong , 毛澤東(모택동) ] 중국의 정치가로 중국공산당의 요직에서 활동하다가 중앙 제7차 전국대표회에서 연합정부론을 발표했다. 장제스와의 내전에 승리하고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은 국가주석 및 혁명 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제2차 5개년개획의 개시와 더불어 3면홍기 운동을 폈고,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죽기 직전 1976년 4월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 위대한 영웅이자 독재자였던 마오쩌둥은 완전히 고립된 채 죽었다. 중공 당주석 모택동이 1976년 9월 9일 오전 0시 10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향년 83세였다. 사망 소식은 오후 4시 장송곡이 방송에 일제히 울려 퍼지며 알려졌다. 방송 직후 천안문 앞 국기 게양대에 걸려.. 더보기
1951.09.08 - 대일강화조약.미일안보조약 조인 1951년 9월 8일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수상이 대일강화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연합국 49개국과 일본과의 대일강화조약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조인됐습니다. 센프란시스코 조약이라고도 불리는 이 조약은 일본이 독도가 자기영토라고 주장하는데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scapin677호에서 명시적으로 표기되었던 독도가 센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빠졌다는 이유를 들어 독도가 한국영토로부터 제외됐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대일강화조약은 일본의 주권회복과 태평양전쟁의 공식적 종식을 승인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을 포함한 52개국이 참가해 4일부터 그 회의가 개최됐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일본은 군말없이 미일안전보장조약에도 서명했습니다. 1952년 4월 28일, 이 조약들이 정식 발효됨으로써 연합군.. 더보기
2009.09.07 -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 발견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翼龍·Pterosaur) 발자국화석이 경북 군위군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 천연기념물센터는 군위군의 백악기 전기(약 9000만년 전~1억1000만년 전) 지층에서 길이 354㎜, 폭 173㎜로,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것 중 가장 큰 익룡 발자국화석 1점을 발견했다고 7일 밝혔다. 비대칭형 세 발가락이 선명한 이번 익룡 발자국화석은 지난 3월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이 중생대 공룡화석산지 기초학술조사를 하던 중 발견했다. 익룡의 오른쪽 앞발로, 지난 1996년 전남 해남군 우항리에서 발견돼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으로 학계에 보고된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의 앞발자국(길이 330㎜, 폭 110㎜)이나 뒷발자국(길이 350㎜, 폭 105㎜)보다.. 더보기
1956. 9. 5 - 화가 이중섭 사망 교과서에서 혹은 책에서 TV에서 한번 쯤 봤을법한 그림이다. 작품 명은 '흰소' 이다. 예술에도 문외한 나도 한번은 본 작품이고, 작가도 한번 쯤 들어본 인물이다. 화가 이중섭. 1956년 9월 5일 화가 이중섭화가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 이중섭의 삶 6.25를 전후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5년. 곧 그를 쫓아온 이남덕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분단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사업가로 원산에서 승승장구하던 형이 처형당한 것이다. 1950년 12월 중섭은 가족과 함께 원산을 떠났다. 고행의 시작이.. 더보기
1898.9.5-<황성신문> 창간되다. 황성신문 창간호(1898년) 1898년 9월 5일 사장 남궁 억, 총무원 나수연 등이 국민지식의 계발과 외세침입에 대한 항쟁의 기치 아래 지금의 서울 광화문에서 창간하였다. 남궁 억은 ≪대한황성신문≫의 판권을 물려받아 오늘날의 합자회사와 같은 고금제(股金制)를 신문사상 최초로 채택해서 운영하였다. 문자는 국한문 혼용이라고 하나 거의 한자에 한글로 토를 단 정도의 한문위주의 문장으로 제작되어 ≪독립신문≫ 이후 여러 신문들이 순한글로 제작되던 전통을 깨뜨려 한학 식자층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1904년 6월 17일 일본인이 한국에서의 황무지개척권을 주한 일본공사를 통하여 한국정부에 요구해오자, 이 신문은 그 부당성을 여러 차례 사설로써 보도하여 그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구국민중대회의 모임인 .. 더보기
1945.09.02 일본항복문서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을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항복'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뜻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은 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전황은'무조건항복'을 결정했다. 일부 장교단이 항복을 거부하며 쿠데타를 계획했지만 대세를 거스를수는 없었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에 울려 펴졌다. 패전과 항복의 조곡이 었다.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이 남았지만 아무도 이 .. 더보기
1952.9.1-대한민국, 국군 징병제 실시 징병제(徵兵制)는 국가의 구성원(주로 성년의 남성)에게 국토를 방위할 병역 의무를 지우고 이를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일정 연령이 된 그 나라의 국민에게 징병검사를 받고 군대에 일정기간 복무하도록 법으로 강제합니다. 병역은 크게 보면 징병제와 모병제로 분류됩니다. (주요 세계 기구 연감 기준. 물론 징병제나 모병제 소속 군인 모두 국제법 상 동일한 군인으로 간주한다.) 현재 징병제는 현대전 양상으로 발전하는 국제 정세상 사실상 큰 전투력을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제도이며 국토방위를 위한 목적으로는 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국가 내부의 정치적 목적이나 국가 조직력 강화 등 국방 이외의 목적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또한 현대전 양상으로 발전하는 국제 정세상 징병제는 점점 폐지되는 추세에 있으며 독일, 스웨덴,.. 더보기
1962.8.31-대한민국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가 막사이사이상 수상 막사이사이상: 막사이사이상(-賞, Ramon Magsaysay Award)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1957년 4월 제정된 국제적 상을 말한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장준하(1962년), 김활란(1963년), 김용기(1966년), 이태영(1975년), 윤석중(1978년), 장기려(1979년), 엄대섭(1980년), 강정렬 (1981년), 제정구 (1986년), 김임순(1989년), 오웅진 신부(1996년), 법륜스님(2002년), 시민운동가 윤혜란(2005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원순(2006년)이 있다. 2007년에는 김선태 목사가 공공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연하동에서.. 더보기